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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칭對稱삼분법과 사회연기론: 새로운 인식론과 사회이론의 모색

 

Abstract

이 글은 새로운 인식론 및 사회이론의 원천으로서 한국의 전통적 세 계관, 그 중에서도 특히 ‘대칭삼분법’과 ‘사회연기론’에 대해 고찰한다. 이 주제는 지배받는 지배자인 한국의 사회학자들에게는 매우 생경하게 느 껴지겠지만, 일상의 한국인 일반에게는 많이 친숙하고 흥미로운 대상이 기도 하다. 동양사회사상의 사회학 이론화를 모색하고 있는 이 글은 지 금까지의 연구들이 과연 어느 정도 일반화의 수준에 도달했는지를 반성 하고 그러한 성찰에 기초하여 연구의 수준을 한층 더 심화시켜 나가고 자 한다.

본 논문은 특히 대칭삼분법 및 연기사회론(혹은 사회연기론)이 이른바 서구 보편이론에 견주어 볼 때 어느 정도의 위치에 놓여 있는지, 구체적 으로 말해 그것의 이론적 의의를 정밀하게 따져보는 동시에 대안 이론 으로서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렇다면 왜 대칭삼분법이고 왜 연기사회 론인가? 필자들은 그동안 대칭삼분법을 배태하고 있는 연기법적 존재론, 인식론, 가치론의 대안 사회이론적 가능성을 탐색해왔고, 대칭삼분법과 연기론이 뿌리깊은 이분법의 유전자를 가진 서구발 특수이론의 맹점을 극복하고, 나아가 탈서구 보편이론으로서 주목할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 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목적을 위해 논문에서는 우선 이분법에 깊이 연루된 기존의 사회 이론, 특히 현상학과 루만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그 한계 돌파 의 필요성을 제시한다. 이어 그 대안으로서 대칭삼분법을 설정할 수 있 음을 이론적으로 논증해 보인다. 그런 다음 연기법을 응용한 사회이론, 즉 연기사회론을 구성하고, 그 연기사회론과 대칭삼분법 사이의 논리적 정합성을 입증한다. 끝으로 이러한 논의가 함축하고 있는 사회학적 의의 를 제시한다.

Translated Abstract

The article discusses Korea's traditional world view as a source of new perceptions and social theory, especially ‘symmetrical trichotomy’ and ‘Buddhistic social theory of causality.’ The theme may sound very unfamiliar to the controlling South Korean sociologists, but it is also a familiar and interesting subject for the everyday Korean public. The article, which is seeking a social theory of East Asian social thoughts, is intended to reflect on how much research has reached the level of generalization and to further deepen the level of research based on such reflection.

This paper specifically illustrates the theoretical significance of the symmetrical trichotomy and Buddhistic social theory of causality in terms of its location relative to the so-called universal theory. So why symmetrical trichotomy and Buddhistic social theory of causality? The authors have been exploring the alternative social theory of ontology, perception and value, which is the reason for overcoming the laws of dichotomy.

For this purpose, the paper first critically reviews the existing social theories deeply involved in the dichotomy, particularly the theories of Phenomenology and Luhmann, and suggests the need to break through the limits. It is then demonstrated in theory that a symmetrical three-way method(trichotomy) can be established as an alternative. It then forms the Buddhistic social theory of causality applied to it, namely, the Buddhistic theory of causality and demonstrates the logical consistency between the two theories. Finally, these discussions present the social implications of these discussions.


서론

I.

아마도 대부분의 사회학자들은 이 글의 제목에 대해 낯설게 느낄 것이다. 지금까지도 한국인의 심리 저변에 대칭삼분법적 세계관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 아울러 연기법이라는 용어와 내용이 한반도 에 소개된 지 1,60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는 사실을 함께 고려하 면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생경함은 엄연한 사실이다. 많은 한국의 사회학자들이 통상 서구 학자들로 구성된 사 회사상사(예컨대 코저)에 대해서는 친숙함을 표현하면서도 동양사회 사상에 대해서는 마치 연구하는 게 신기한 일인양 의아하게 쳐다보 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필자들은 최근 모 학자로부 터 비트겐슈타인은 친숙하지만 원효와 성호의 사상은 무척이나 생 경하다는 표현을 직접 들은 일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 한국 인구의 1/4 이상을 차지하는 불자들에게, 아 니 불교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연기법은 매우 익숙한 개념이다. 그들은 연기법이야말로 자신의 삶의 문제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근본 법칙이자 삶의 고단함을 달래고 기댈 수 있는 언덕이라고 믿 고 있다. 또한 우실하(2012)의 일련의 연구가 실증하고 있듯이 태고 적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국인들의 삶은 삼수분화의 코드(혹은 문화문법)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뿐 아니라 더 구체적으로는 태극, 중도, 중용 등 대칭삼분법의 논리 규정성 및 구조와 긴밀하게 연결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학자가, 최소한 한국의 사회학자가 이 글의 테제와 관련된 연구를 수행하는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자연스럽다. 실제로 지난 20여 년간 동양사회사상학회에 소속된 일군의 사회학 자들이 이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일련의 연구들을 수행해 왔다. 유교사회학(이영찬, 2001; 최우영, 2009), 불교사회학(유승무, 2010), 삼수분화의 세계관(우실하, 2012), 통일체와 깨달음의 사회학(홍승표, 2010), 마음사회학(유승무 외, 출간예정) 등이 대표적인 연구 성과이 다. 지배받는 지배자인 한국의 사회학자들에게는 서럽도록 생경하게 느껴지겠지만 한국인 일반에게는 매우 친숙하고 흥미로운 주제를 꾸준히 연구해 온 셈이다. 이제 지금의 과제는 그러한 연구 성과들 이 과연 어느 정도 일반화의 수준에 도달했는지를 반성하고 그 성 찰에 기초하여 연구의 수준을 한 차원 더 심화시켜 나가는 일일 것 이다.

본 논문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지만, 한정된 지면 상 이 러한 작업을 전면적으로 수행하기란 불가한 일이다. 해서 이 글에서 는 상기의 연구 성과 중 극히 일부, 즉 대칭삼분법 및 연기사회론 (혹은 사회연기론)이 이른바 서구 보편이론에 견주어 볼 때 어느 정 도의 위치에 놓여 있는지, 구체적으로 말해 그것의 이론적 의의를 정밀하게 따져보는 동시에 대안 이론으로서의 가능성을 확장해보고 자 한다. 이 대목에서 혹자는 질문할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왜 대칭 삼분법이고 또 왜 연기사회론인가? 여기에는 그 동안 - 일정 정도 불가피한 면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 기계적, 단절적 이분법 의 논리 속에서 우리가 숱하게 느껴왔던 어떤 답답함이 작용하였다. 그 연장선상에서 필자들은 대칭삼분법을 배태하고 있는 연기법적 존재론, 인식론, 가치론의 대안 사회이론적 가능성을 탐색하게 되었 고, 결과적으로 대칭삼분법과 연기론이 뿌리깊은 이분법의 유전자를 가진 서구발 특수이론의 맹점을 극복하고, 나아가 탈서구 보편이론 으로서 주목할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1)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아래에서는 우선 이분법에 깊이 연 루된 기존의 사회이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그 한계 돌파의 필요 성을 제시한 다음, 대안으로서 대칭삼분법을 설정할 수 있음을 이론 적으로 논증하고자 한다. 그 후 시론적 차원에서나마 연기법을 응용 한 사회이론, 즉 연기사회론을 구성한 다음, 그 연기사회론과 대칭 삼분법 사이의 논리적 정합성을 입증해보일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이러한 논의가 가질 사회학적 의의를 제시하고자 한다.

이분법을 넘어 대칭삼분법으로

II.

사회이론에 관한 논의를 고전이론가들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사회 학계에서 일종의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 그것은 아마도 맑스, 베버, 뒤르케임 등의 사회이론이 사회학사에서 워낙 중요한 위치를 차지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자명하게도, 그들로부터 시작하는 한 그들의 그림자로부터 쉽게 벗어날 수 없게 되는 것 또한 사실이 고, 그러한 점에서 상기 관행을 따르는 것은 자신의 한계를 이미 전 제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사회적인 것(the social)’을 이론화 함에 있어서 베버처럼 행위의 동기를 이해한다든지, 혹은 구조기능 주의나 구조주의처럼 구조라는 모델을 통해 실재를 설명하는 것은 이미 상당 부분 설득력을 상실하였다.2) 오히려 쿨리(1909; 1922; 1930)나 불루머(1982) 등의 상징적 상호작용론, 엘리아스의 사회론(1996), 기든스의 구조화이론(2006) 등은 인간(행위자)과 인간(행위자) 의 관계이든 행위와 구조의 관계이든 양자 사이의 역동적 관계를 논의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인 것’을 설명하는데 좀 더 설득력 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필자들이 보기에 그러한 이 론들도 양자 각각을 실체實體로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궁극적으 로는 형식논리학의 이분법이란 늪지를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면에 현상학과 루만(Luhmann)의 사회이론은 상대적으로 진지한 검토를 요한다. 실제로 이 이론들은, ‘의식’이든 ‘사회적 체계’이든 하나의 단위 내부에서 창발하는, 주체와 타자의 역동성을 통하여 ‘사회적인 것’을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글에서 주목하는 연기 론에 가장 근접해 있다. 그러나/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회연기론의 독창성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그것이 현상학이나 루만의 사회이론과 어떠한 차이를 갖는지 드러내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아래에서는 현 상학과 루만의 사회이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다음 그러한 사회이 론들에 내재해 있는 이분법적 한계를 밝히고, 연기사회론에 배태된 대칭삼분법이 그러한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현상학을 보자. 주지하듯이 현상학은 명증한 제 1철학을 수 립하고자 했던 훗설(Husserl)에 의해 체계화된 이후 지금까지도 지속 적인 논쟁을 거치면서 발전을 거듭하고 있고, 그러한 점에서 한마디 로 규정하기 어려운 학문 조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현상학 은 의식의 내부에서 의식의 흐름을 규명하는 학문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공통점을 갖는다. 바로 그러한 특징은 훗설의 스승이었던 브렌 타노(Brentano)와 브렌타노 심리학의 기원인 중세 스콜라철학에서부 터 그 뿌리를 갖고 있다. 브렌타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모든 심적 현상의 특징은 중세의 스콜라 철학자들이 대상의 지향적(또는 심적) 내존재(inexistence)라고 부른 것에 의해 특징지워진다...모든 심 적 현상은, 모두 같은 방식으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자 체 내에 대상으로서의 어떤 것을 포함하고 있다...그럼으로써 우리는 심적 현상들을 지향적으로 대상을 그 자체 내에 포함하고 있는 현 상이라고 말함으로써 정의할 수 있다.”

위의 인용문은 브렌타노의 주장을 인용하고 있는 『마음의 현상학』(갤러거·자하비, 2013: 193)의 내용을 필자들이 다시 요약한 것이다. 여기에는 현상학이야말로 심적 현상 내부에 존재하며 대상을 지향 하는 심적 현상을 다루는 학문임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으며, 이는 스콜라철학에 뿌리를 두면서 브렌타노에 의해 발전되었음이 암시되 어 있다. 수학자였던 훗설이 브렌타노의 강의로 말미암아 현상학을 체계화하게 되었다는 사실 역시 현상학의 학문적 정체성이 의식 내 부에서 의식과 그 대상 사이의 역동적 관계를 다루는데 있음을 말 해주고 있다.

실제로 명증한 지식을 추구한 훗설은 의식 내부에서 순수하게 통 찰할 수 있는 것 외에는 철저하게 배제함으로써 어떠한 초월적 본 질도 내포하지 않은 순수한 내재적 의식의 흐름을 파악하고자 하였 다. 이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장치가 바로 ‘현상학적 환원’인 바, 그 것은 초월적 세계로부터 의식 내재적 세계로의 환원을 의미한다. 그 리고 이는 우리의 통상적인 자연적 태도에 대한 ‘판단중지’를 통해 지각장 내부에 존재하는 대상에게만 관심을 집중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 “자연적 태도에 대한 판단 중지란 이렇게 바깥으로 드러나 있지 않은 잠재적인 정립을 일부러 끄집어내어 그 현실적 지배를 무력하게 하고, 그 속에 포함된 주장, 확신의 힘을 <배제하 고>, 그 정립, 확신을 <괄호친다>는 말이다...그런 의미에서 <판단 보류>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판단을 중단한다거나 그만둔다는 말이 아니라 판단이 가지고 있는 <...이다> 또는 <...이 아니다>라는 주 장을 <작용 못하게 하자>는 것이다(한전숙, 1996: 134-135).”

이렇듯 현상학적 환원이나 판단중지를 통해 최종적으로 순수한 내재적 의식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훗설의 주장이다. “의식의 존 재, 각각의 체험류 일반의 존재는 사물계의 소멸로 인하여 변양을 입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지만 그 자체의 현실존재에 있어서는 아 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다...그러므로 내재적 존재는 그것이 현실적으 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원칙상 다른 아무런 <존재>도 필요하지 않 다는 의미에서 의심할 여지없이 절대적 존재이다(한전숙, 1996: 149-150).”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연구자는 관찰자로서 내재적 의식 혹 은 의식의 흐름에 관심을 집중해야 하고 그럴 경우 비로소 그 속에 서 내재화된 대상과 주체의 역동성을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 훗설 의 주장이다. 그런데 이러한 훗설의 주장은 대상과 상호작용하는 주 체 혹은 주관을 전제하고 있다. 이는 칸트의 표현을 응용하여 표현 하면, 선험적 주관이 훗설의 현상학 속에 전제되어 있음을 의미한 다. 실제로 훗설은 자신의 현상학을 ‘선험적 관념론’으로 명명하고... 자기의 선험적 관념론이 물자체와 같은 한계 개념을 허용할 수 있 다고 믿는 칸트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고 언명하는데, 이러한 주장 은 주관에 의해서 설명할 수 없는 어떠한 영역도 존재하지 않는다 고 간주하는 것이다(한전숙, 1996: 195). 그리고 그가 이러한 주관에 의한 의식의 구성작용을 질료(의식체험에서 그 자신 지향성을 간직 하지 않은 감성적인 층)와 노에시스(그 의식체험에 혼을 넣어주고 의미를 부여하는 층)란 개념으로 설명하고 그 산물을 노에마(noema) 라 불렀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렇게 볼 때 훗설은 그가 비록 의식의 흐름을 명증하게 파악하 려는 현상학의 제창자임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그것을 주관주의적 관념론으로 한정함으로써 서구의 주류 이성주의理性主義로 철저하 게 복귀하고 있다. 이러한 복귀는 이후 신랄한 비판에 직면한다. 훗 설 자신의 직제자인 하이데거의 비판이 대표적인데, 하이데거는 의 식작용을 선험적 주관이 아니라 현존재의 존재방식이나 자기실현방 식에 의해 규정되는 것으로 보아 스승과는 다른 이른바 실존주의적 현상학3)을 주장하게 된다. 필자들의 관심사인 마음(혹은 의식)과 사 회의 관계라는 차원에서 보면, 훗설의 현상학은 의식의 내외를 배타 적으로 구분한 다음 의식 외부를 철저하게 배제하고 있는 바, 이는 그의 이론이 이분법적 틀을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음은 물론 의식 결정론적 한계 혹은 관념론적 한계를 내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바 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그 반대편의 사회이론가, 즉 훗설을 징검다 리삼아 사회적 체계의 소통(작동)을 분석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이 는 루만의 사회이론을 검토할 필요성을 느낀다.

루만에 따르면 사회적 체계 내부에서 작동하는 소통은 인간이나 그의 이성 및 합리성 여부와는 아무 상관없이 자기준거적으로 재생 산될 뿐이다. 루만은 자신의 대표 저서인 『사회체계론』의 7장 서두 에서 인간과 사회적 체계 사이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깔끔하게 정 리한다: “우리는 사회적 체계들이 살아있는 인간들은커녕 심리적 체 계들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는다...이러한 작 동(사회적 체계의 자율적인 요소적 작동)에서는 소통들이 관건이다. 이러한 작동들이 바로 소통이다. 역으로 심리적 과정 자체, 다시 말 해 의식 과정들은 관건이 아니다.” 이렇듯 소통은 오직 사회적 체계 인 사회에만 존재하며 사회 외부에는 소통이 존재할 수 없다. 그렇 기 때문에 루만의 소통이론에 따르면 체계와 체계 사이 혹은 인간 과 타자 사이에는 소통이 존재할 수 없다. 게다가 루만의 체계/환경 -차이 도식에 의거할 때 사회적 체계와 인간 사이의 소통문제를 상 호작용으로 설명하는 것은 범주의 오류에 빠진다. 결국 루만의 이론 설계도에서 전통적 의미의 주체 자리에는 작동상 닫힌 자기준거적 소통체계가 위치하고 전통적 의미의 객체 자리에는 소통체계의 환 경이 들어선다. 따라서 인간은 소통의 주체가 아니라 소통의 외부 환경에 속한다.4)

결국 루만에게 있어서 인간은 사회체계의 환경일 뿐이다. 마찬가 지로 타자는 자아의 환경이며 자아는 타자의 환경일 뿐이다. 인간과 사회는 물론 인간과 인간조차도 소통이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비록 루만이 자아의 타자성(Alter-ego)를 인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 고, 그의 소통이론에는 인간들 사이의 마음이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루만의 소통이론이 이러한 한계를 갖 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까닭은 루만이 소통을 또 하나의 존재자인 체계 내부에서만 작동하는 것으로 설정하였기 때문이다. 존재자로서 체계 속의 소통은 존재자 밖의 소통 혹은 존재자들 사이의 소통, 즉 존재자 밖 존재의 소통을 결코 다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루만의 사회이론 역시 체계와 환경을 비타협적으로 분리한 다음 사회적 소통에서 환경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있으며, 그러한 점에서 이분법적 틀의 구속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체계 결정 론의 한계마저 내장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렇듯 기존의 서구 사회이론에 끈질기게 따라 다니는 형이상학적 이분법을 극복 내지 상대화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 일까? 이 지점에서 우리는 ‘대칭삼분법’을 주목한다. 대칭삼분법이란 표현은 김열규(1986)가 제주신화의 대간大竿에 깃든 우주론을 분석 하면서 사용한 개념인데, 여기에서 대칭이란 대대적 관계를 가진 양 자兩者를 의미하며, 삼三은 그 양자 각각의 내부에 포함된 상징수, 즉 천부경 등에서 기수基數나 성수聖數로 여기는 삼을 의미한다. 그 러나 우리는 이 개념을 조작적 차원에서 태극이나 절합 구조에 깃 든 대칭삼분구조로 정의하여 사용하고자 한다. 다시 말하면 이 글에 서 대칭삼분구조란 음과 양의 대칭(혹은 이분二分)에다가 큰 일원, 즉 안팎 구분에서 얻어진 일분一分이 합쳐진 구조 혹은 대대적 양 자(이분)의 절합에 의해 생겨난 제 3지대(즉 일분)를 포함한 구조를 의미한다.

이러한 대칭삼분법에 따르면 대대적 양자는 대립적 차원을 포함 하면서도 동시에 안팎의 구분이란 차원에서는 하나의 단위에 포함 된 동일체(Einheit)이다. 이러한 대칭삼분법에서는 양자가 내부적 차 원에서는 갈등적 관계에 놓이지만, 단위 외부와의 대립 상황에서는 동일한 이해선상에 놓인다. 이는 이분법의 양자와 그 사이의 절합 지점(혹은 절합 영역, 절합 지대)을 관계 및 분화의 기본단위로 설정 하거나 태극의 관계로 설정함으로써 ‘3자 관계(triad)’ 및 ‘3수 분화의 세계’5)를 성립가능하게 하는 논리적 틀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태 극의 큰 일원이나 절합의 제 3지대는 양자를 매개하는 결정적인 기 능을 수행한다. 그 대표적인 예를 우리는 중용이나 중도의 논리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데, 중용 혹은 중도가 바로 양극단을 지양하는 지점, 즉 ‘제 3자(혹은 제 3지대)’에 속한다. 그렇기 때문에 태극의 큰 일원이나 제 3지대는 서구 이분법에 전제된 배중율排中律로 인 해 배제되거나 사상捨象된 대상이나 현상을 존재 그대로 불러내어 설명할 수 있고, 그러한 점에서 이분법적 사회이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 논리를 함축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대칭삼분법은 연기緣起, 공空, 불이不二 관계를 전제 하는 불교 등 동양사상의 기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6) 이에 여기에서도 중도를 가능하게 하는 일종의 이법으로서 연기법을 이 론구성의 기본 틀로 활용한 새로운 사회이론, 즉 연기사회론을 제시 함으로써 직접적으로는 삼분법에 부합하는 사회이론을 구성해보고 자 하며, 간접적으로는 이분법적 사회이론의 극복 가능성을 밝혀 보 려고 한다.

연기사회론과 그 삼분법적 특성

III.

현상학과 루만의 종합으로서 연기사회론

1.

앞에서 우리는 현상학과 루만의 사회이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바 있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는 두 가지 이론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알 수 있었다. 우선 공통점을 보면 두 이론은 모두, 스스로 전제하 고 있는 범주 혹은 실존주實存疇7)로서의 단위 내부에서 작동하는 양자의 역동성을 시간의 흐름에 따른 구성주의적 관점에서 명쾌하 게 기술하고 있다. 그 결과 두 이론 모두 자신이 설정한 단위를 작 동상 폐쇄의 경계로 설정하고 그 외부의 대상 일체를 배제하는 공 통점도 갖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이 두 이론은 작동상 폐쇄된 단위 내부의 차원에서는 대칭삼분법과 유사하지만 그 외부의 대상 일체 를 배제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대칭삼분법과 다르다.

그런데 루만의 사회이론이 배제하는 의식(혹은 마음)과 현상학이 배제하는 일종의 물 자체로서 사회적 체계라는 범주는 이 글에서 우리가 관심을 갖는 두 요소이다. 그리고 대칭삼분법의 제 3지대에 관심을 갖고 있는 우리는 의식 내부의 역동성과 사회적 체계 내부 의 소통 작동을 공유할 뿐 아니라, 그 양자 사이의 관계 속에서 매 개적으로 작동하는 중중무진의 상호의존성까지 연기법으로 파악하 고자 한다. 우리는 삼자, 즉 의식 내부, 사회적 체계 내부, 그리고 그 양자 사이의 관계가 모두 연기법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본다.

연기법이란 다음과 같은 공식으로 단순화할 수 있다: 이것이 있 으면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면 이것이 있다. 이것이 변하면 저것 이 변하고, 저것이 변하면 이것이 변한다. 이 공식에 따르면, 이것과 저것은 범주 상 구별되는 존재자이지만 실체가 아니라 내적 요소들 의 작동에 의해 ‘구성’되는 존재이다. 동시에 이것과 저것은 상호지 시체이다. 존재자 이것의 존재가 존재자 저것 존재의 존재 조건일 뿐만 아니라 이것의 존재함에는 항상 저것의 존재가 수반된다. 게다 가 이것과 저것의 관계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찰라생 찰라멸 하는 사건(제사際事, 다음 절을 보라)이다. 설상가상으로 이것과 저것 그 리고 그 관계 각각에는 지각장知覺場을 넘어서서 존재하는 중중무 진의 요소가 영향을 미친다. 그런 까닭에 이것과 저것 사이에는 상 호의존성과 상호인과성이 성립한다. 바로 이 지점이 실천이성적 차 원으로 전화되어 이해되고 실행될 때 ‘(절대)신 없는 자비’8)의 가능 성이 열리는 곳이다.

여기에 이르면, 다음과 같은 우리의 가설은 일정한 성립근거를 확보한다: 이러한 연기법을 인간(혹은 의식, 마음)과 사회(혹은 사회 적 체계)의 관계에 적용하여 이론화한다면, 연기사회론의 구성이 가 능해질 것이다. 실제로 우리들은 이미 이와 유사한 시도를 위해 진 력해오고 있다. 오른쪽 <그림 1>이 바로 그것이다.

<그림 1>

연기사회모형: 마음과 사회체계의 중층의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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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은 연기사회론을 이해하기 쉽게 도상화한 것이다. 여기 에서 예컨대 과시현상을 보자. 이를 연기사회론으로 설명해보면, 마 음의 작동 코드(탐욕/금욕)와 사회적 체계의 작동 코드(지불/비지불) 사이의 역동적 결합이 과시현상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연기사회론의 제 3지대와 그 제사際事

2.

앞 절에서 구성한 연기사회론은 이분법을 내포한 사회이론과는 달리 양자 모두는 물론 그 어느 하나도 실체로 전제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양자의 관계를 단일한 인과관계로 설정하지 않는다. 바로 그 렇기 때문에 연기사회론에서는 이분법에서 배제되기 쉬운 제 3지대 가 오히려 부각되는 경향이 뚜렷하다. 한국사회를 비롯한 동양사회 의 문화 현상은 이를 잘 보여준다.

실제로 굳이 천부경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동양사회에서는 고대부 터 ‘삼’의 존재론과 인식론이 잘 발달해 있었다. 단적인 예로, 한자 漢字 ‘삼’은 삼 자신의 존재론은 물론 ‘제 3지대’의 존재론을 가장 잘 집약하고 있는 상징적 단어이다. 자전字典에서 ‘삼’은 날 일 부와 두 이가 결합한 단어다. 하나의 단위에 속하면서도 그 내부에 이질 적인 두 가지 속성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는 것, 곧 태극과 같은 것 이 ‘삼’이다.9) 이 ‘삼’은 존재론적으로 이것과도 다르지만 저것과도 다른 ‘제 3지대’에 속해 있다. 인칭대명사로 표현하면 ‘나’와 ‘너’가 아니라 ‘그’에 해당하며, 말하자면 하이데거의 ‘그것(Es)’과 유사하다. 가치로 말하면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라 ‘그저 그런 것’이다. 이해관 계로 보면, 주관자의 반대로서 객관자가 아니라 이편도 아니고 저편 도 아닌 제 3자로서 객관자에 해당한다.

그런데 동양사상은 이러한 사회성을 체득한 사람의 인성에 최고 의 가치를 부여한다. 동양사상에 따르면 붓다의 자비나 공자의 인仁 은 바로 이러한 사회성을 체득함으로써 사사로운 이해관계나 감정 을 초월할 때 비로소 실현되는 공公의 세계를 뒷받침하는 핵심 가 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수행이 나 수양을 통해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그러한 공의 상태로 만들어 야 한다. 이렇듯 동양사상은 신이나 절대적 타자를 전제하지 않고도 자아와 타자의 불가분의 관계를 이론화하는데 성공하고 있으며, 바 로 이 점에서 법계연기는 지금 탈서구 보편이론의 지위를 갖는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게다가 법계연기는 실천적 차원에서도 ‘자비 행’이나 ‘선업’의 규범적 토대로 작용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마음과 사회 사이의 제 3지대는 공유지이자 공공의 영역인 셈이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에서는 이 공유지가 어떤 형태로 존재해 왔는가? 실제로 역사 속에서 한국인들은 이른바 제 3지대 사회성을 매우 중시해왔다. 이러한 한국인의 독특한 사회성을 최봉 영은 다음과 같이 잘 요약한다: “한국인에게 모든 존재는 끊임없이 일어남 속에 있기 때문에 ‘없다’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다른 상태로 있음’을 말한다(조선일보, 2007.5.29., A23).” 수학에서 제로의 기능처럼, ‘없다(혹은 무)’가 존재하기 때문에 단위성은 물론 사건과 사건 사이의 시간이 성립한다. 그리고 사건과 사건 사이의 시간의 흐름은 구성과 과정을 수반한다.10)

그렇기 때문에 한국사회에서는 제 3지대의 ‘마음사회’가 매우 발 달해 왔다. 무엇보다도 약 1,500년 역사 동안 한국 심학心學의 축적 이 이루어졌던 바, 이 심학에 따르면, 마음은 ‘외부의 대상을 맞아들 여 아는 주재자主宰者’이며, 그렇기 때문에 주자의 초월적 주체로서 심이란 측면도 내포하고 있지만 청나라를 대표하는 철학자 대진戴 震이 말하는 심지心知와도 유사하다. 이와 비슷한 예는 불교의 불이 不二사상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여기에서 불이란 선악, 유무, 미추 가 둘이 아님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고 중 생의 세계와 부처의 세계가 둘이 아님을 의미한다. 이러한 불이사상 에 따르면 이 세상의 모든 대상은 둘이 아닌 것으로 관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왜 하필 직접 ‘하나’라 지시하지 않고 ‘둘이 아니 다’라고 언명해야 했을까? 겉으로 드러난 현상은 분명히 둘이지만 존재론적 차원에서는 그 둘조차도 서로서로 상대에게 의지하고 있 음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불교사상이 이미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듯이 연기법의 실천적 지 향은 중도사상으로 귀결된다. 여기에서 중도란 대립되는 두 극단(이 변二邊)을 버리고 치우침이 없는 바른 도道라는 의미로서 양극단의 중간이 아니라 두 극단을 버릴 때 스스로 창발하게 되는 제 3자의 사고방식이나 태도 및 삶의 방식을 말한다. 이는 유교의 중용도 마 찬가지다. 이러한 중도 혹은 중용의 시각에서 보면, 양 극단의 ‘사 이’에서 창발하는 사건이나 사실, 즉 제사야말로 결정적인 가치를 가진다. 여기에서 제사는 양극 즉 이것이나 저것으로 환원되지 않은 제 3지대에서 창발하는 새롭고 독자적인 현상이나 사건이지만, 그렇 다고 이것이나 저것과 무관한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사의 시각에서 보면 일체의 실체적 사고는 모두 비판의 칼날을 비켜 갈 수 없게 된다. 저 유명한 명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대칭삼분법을 배태한 사회연기론의 사회학적 함의

IV.

대칭삼분법을 배태한 연기사회론의 보편성

1.

우리는 제 II장에서 대칭삼분법이 이분법적 사회이론을 극복할 수 있는 인식틀이 될 수 있음을 살펴보았고, 이어서 제 III장에서는 연기사회론을 구성하고 그 속에 삼분법이 배태되어 있음을 밝혀 보 았다. 이는 연기사회론이 이분법의 한계를 지양함은 물론 그 대안으 로 제시된 삼분법마저도 지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성립 가능한 사 회이론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연기사회론이 그러한 특성을 가진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연기법의 특성에서 연원한다.

연기법에 따르면 일체의 분별은 관찰자의 마음의 소산일 뿐이고 여실한 현실은 그 마음 밖에서 중중무진의 요인들이 인드라망의 구 슬처럼 중층적 상호의존관계를 형성하면서 시시각각 그 모습을 달 리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대칭삼분법마저도 여실한 현실을 축소한 논리적 모델이거나 인식론적 기본구조 혹은 인식틀일 뿐이고 여실 한 현실에서는 지각장을 훨씬 초월한 복잡성이 작동하고 있다. 실제 로 삼분법이 세 번만 내향적으로 분화해도 그 복잡성은 지각장을 훌쩍 넘어선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자기부정, 자기비움, 자기초월로서 공空이 요구 된다. 공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체득할 때 존재자와 존재자 에 대한 집착은 물론 존재자를 규정하는 시공간과 그 경계마저도 무화無化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 관찰자는 사私를 넘어서 공 公의 세계로 도약하여 분별심에 따른 차별과 억압을 극복하고, 배제 된 것을 다시 불러내어 인정하게 된다. 그 이후 모든 차이는 절대적 차이가 아니라 상관적 차이로 관찰된다. 이는 불교의 지관에 의한 여실한 관찰의 실천적 효과와 유사한 결과이다.

이러한 연기법적 관점은 현상학과 루만의 사회이론을 결합하여 새로운 사회이론을 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이에 제 III 장 1절에서 우리는 연기법을 적용하여 사회이론 구성 작업 즉 현상 학과 루만의 사회이론을 종합하여 그것을 연기사회론이라 명명한 바 있다. 아래의 인용문은 화엄 4조 징관澄觀의 이야기에서 따온 것 인데, 여기에는 연기사회론의 종합적 성격이 잘 드러나 있다.

“한 승려가 거울이 달려 있는 방에서 제자에게 설법하고 있었다. 거 울과 승려와 제자들은 각각 진심과 부처와 인간을 상징한다. 거울은 서 로 마주보고 있는 두 부류의 모습을 반사한다. 하나의 말하는 자이고, 다른 하나는 듣는 자이다. 이 현상에 참가하고 있는 사람들의 상호관계 를 서술하기 위해서, 우리는 제자의 거울 속에 있는 승려가 승려의 거 울 속에 있는 제자에게 설법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으며, 승려의 거 울 속에 있는 제자가 제자의 거울 속에 있는 승려에 의해 설해진 법을 듣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부처가 사람에게 설법할 때 그것은 두 가 지 방식의 관계- 하나는 말하고 다른 하나는 듣는 -가 아니라, 네 가지 방식의 관계-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부처가 부처의 마음속에 있는 사람 에게 설법하고, 부처의 마음속에 있는 사람이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그 부처의 설교를 듣는 -이다”

(까르마 츠앙, 1990: 226-227 재인용)

위의 인용문을 보면, 실제로 ‘거울이 달린 방’에서 승려가 제자에 게 설법을 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거울은 승려를 제자에게 보여주 고 또 제자를 승려에게 반사하는 기능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거 울을 통해 각자에게는 쿨리(Cooley)가 말하는 명경자아(looking-glass self)가 형성된다. 그런데 거울을 진심에, 승려를 부처에, 그리고 제자 를 인간에 각각 배대하여 이해하는 순간 승려와 제자의 마음 내부 에서는 현상학적 의식의 흐름이 작동한다. 다시 말하면 미드(Mead) 의 ‘I’ 정체성과 ‘Me’ 정체성 사이에 변증법적 상호작용이 이루어진 다. 이렇게 볼 때 승려(부처)가 제자(사람)에게 설법을 할 때는 항상 거울(진심)이 매개되면서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이며, 바로 그렇기 때 문에 한편으로는 두 가지 방식의 관계, 즉 승려의 마음 속에서 이루 어지는 현상학적 흐름과 제자의 마음 속에서 작동하는 현상학적 흐 름이 존재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또 다른 두 가지 방식의 관 계, 즉 실제 승려와 실제 제자 사이의 소통, 곧 현장에서 실제로 벌 어지는 소통작동도 존재하지만, 루만의 사회이론처럼 그 실제 행위 자들과 무관하게 작동하는 소통, 즉 승려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정보), 곧 승려의 마음 속 제자에게 설법할 내용으로서 정보가 설법을 통해 제자에게 전달되지만, 그것을 제자는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승려가 설법하는 내용으로 해석하는 소통 및 후속 소통의 연 쇄가 일어난다. 그래서 이를 종합하여 인용문의 마지막에서 징관은 네 가지 방식의 사회적 관계로 이해할 것을 주문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연기사회론의 이론적 위상은 무엇인가? 우선 연 기법의 특성 상 대상의 배제가 발생할 수 없다. 이론에 의한 대상의 자의적 제단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에서 비롯된 이론 적 강점은 두말할 나위 없이 그 무엇인가의 배제를 전제한 일체의 사회이론을 지양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다는 데에 있다. 바로 이 러한 잠재력이야말로 현상학의 한계와 루만 사회이론의 폐쇄성을 넘어설 수 있는 초월적 이론 에너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방 법론적 차원에서 보더라도 연기사회론은 이미 객관성 요구에 충분 히 부응하고 있다. 하버마스가 전제하는 간주관성조차도 규범성을 전제한 사회이론이란 점을 고려하면, 공의 자기부정성이야말로 어느 방법론보다 객관성 요구를 가장 잘 충족시킬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 이다.

사회연기론의 방법론적 함의

2.

이 글은 한국사회의 사회적 사실 중 일부가 서구의 사회이론에 의해 피상적으로 재단되거나 아예 묻혀버리고 있는 현실에 대한 비 판적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고래로부터 동양사회에 내재되어 온 문화문법인 대칭삼분법을 논의한 것도, 그리고 사물의 이치를 이해 하는 보편 법칙으로 인정받고 있는 연기법을 활용하여 새로운 사회 이론을 구성하고자 한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에 충실히 답하고자 했 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연기사회론은 어떠한 방법론적 함의를 갖는가? 물론 이에 대한 정확한 대답은 이를 입증할 수 있는 별도의 연구를 수없이 축적한 이후에야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그 단초만이라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첫째, 횡적인 분석 단위의 차원에서 보면, 선택한 분석 단위 내부 의 연과 외부의 연이 중층적 인과관계를 맺으면서(소통하면서) 마음 과 사회에 각각 무엇인가를 일으키는 것(起)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러한 해석은 독립변수와 종속변수를 선택하고 그 두 변수 사이의 선형적 인과관계를 설정하는 것보다 구체적인 현실에 훨씬 더 가까 이 다가설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기존의 선형적 인과모형에 입각 한 사회분석은 종속변수의 다양성 및 변화를 설명하는데 큰 장점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독립변수의 변화 및 다양성을 설명하지 못할 뿐 아니라, 독립변수와 종속변수 각각이 서로의 영향으로 찰라적으 로 변화하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 이에 비하면 연기적 시각과 방법은 이러한 한계를 모두 극복할 수 있는 더 섬세한 이론모형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국민국가를 기본 단 위로 하는 기존의 사회학은 세계화를 계기로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 어 형성 및 작동하는 새로운 사회를 설명하는데 한계를 드러내지만, 연기적 시각에는 그러한 한계가 애초에 설정되지 않는다.

둘째, 시간적 차원에서 보면, 선택된 분석 시점 이전(과거 연)과 분석 시점 이후의 연이 중층적 인과관계를 매개로 ‘대화’하는 과정 에서 마음과 사회에 각각 무엇인가를 일으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역동적 시야가 열린다. 이러한 시각은 순간순간 변화하는 마음 과 사회의 현재를 이해하는데도 유효하지만, 그것을 넘어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사회의 장기지속을 이해하는 데에도 매우 유용하다. 따 라서 서구 근대의 합리성을 배후가정으로 설정하고 있는 기존 사회 학의 한계를 극복하고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동양사회를 이해하 는데 매우 요긴할 것이다. 예컨대 ‘민족주의’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 만 하더라도, 기존의 주류 패러다임은 국민국가의 탄생을 민족주의 의 시작으로 보는 반면에, 동양사회의 경우 그보다 훨씬 이전에 원 민족이나 전근대민족이 존재했었고, 그것이 근대 이후의 민족주의와 모종의 상호 인과성을 형성하면서 현재도 진행해가고 있다고 해석 할 수 있다(신용하, 2017). 기존 현대 사회학이 주로 현대사회의 부 분체계들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는데 치중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 면, 시간 차원의 연기적 시각은 현대 사회학의 협소한 시간적 관점 을 과거와 미래로 확장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셋째, 행위자의 차원에서 보면, 행위자 자신의 내부 연과 외부의 연(세계, 환경)이 중층적 인과관계를 맺으면서 한편으로는 행위자 자 신의 마음(혹은 인성)을 형성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속한 사회 를 구성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에서 전자는 사회심리학적 시각을 확장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고, 후자는 행위자의 능동적 소통 이 사회의 구성에 영향을 미치는 구체적 과정을 실증함으로써 루만 의 구조적 연동 개념을 구체화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특히 이러 한 시각은 그동안 근대 사회철학을 주도해 온 주관과 객관의 이분 법적 틀은 물론 간주관성 논의의 궁색함을 극복하는데 큰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기존의 상호작용론이 인간들 사이의 상호작용 에 치중하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는 데에도 생산적인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넷째, 마음 그 자체 그리고 사회 그 자체의 차원에서도 내부의 연 과 외부의 연이 중층적 인과관계를 맺어 공진화하는 과정을 이해하 는데 도움을 준다. 예컨대 마음의 경우, 마음 내부의 연과 외부의 연이 중층적 인과관계를 맺는 마음의 구성 및 작동방식에 대한 이 해는 마음에 대한 심리학적 시각을 확장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또 한 사회적 체계의 경우, 정치나 경제 등 부분체계들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기여함으로써 행위의 소통에 관심을 갖는 파슨스주의자 들은 물론, 하버마스 소통행위론의 한계를 고민하는 연구자들에게도 돌파의 계기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섯째, 기존의 해석학적 전통이 사회적 행위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반해, 마음과 사회의 동행에 대한 해석학적 연구는 마음을 중시하는 동양사상-사회의 관계와 더불어 동양사회의 마음문화를 이해 및 해석할 수 있는 방법론적 타당성을 갖는다. 바로 이 점에 착안하여 황태연은 공자의 윤리학과 정치철학을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이론으로 ‘서恕’ 개념에 기초한 ‘공감의 해석학’을 제 시하고 있지만(황태연, 2015), 이 글이 주목하는 마음의 해석학은 공 감의 해석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넓고 확장된 보편의 지평을 열 어준다.

결론

V.

우리는 지금까지 동양사회사상에 대한 사회학적 이론연구의 성과 들을 평가해보기 위해, 특별히 대칭삼분법과 그것을 배태한 연기사 회론을 집중적으로, 그러면서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해 보았다. 이 를 통해 우리는 기존의 서구발 이분법적 사회이론의 관점에서는 매 우 생경하지만, 대다수 보통 한국인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익숙한 현 장의 이론, 즉 삶의 일상적 문법들을 설명해줄 수 있는 새로운 사회 이론의 가능성을 모색해 보았다.

그러나 이 시도가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는지, 그래서 어느 정도 성공(혹은 실패)했는지 지금 당장은 알 수 없다. 그것은 연이은 연구 와 후속 평가를 통해 판가름 날 것이다. 다만 우리는 이러한 시도가 기존의 사회학에서 배제된 현상(대상)을 부활시켜 그것을 새롭게 재 조명할 수 있는 하나의 계기는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미래 어느 날 다음과 같은 현상을 실증할 수 있는 농익은 사회이론이 개 화하기를 기대한다.

한국인은 그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황금빛 들녘은 노르스름하다. 그리고 송광사의 흑매黑梅는 검붉다.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너 무 붉어서 검은 것처럼 인식되는 세계도 있고, 노란색도 아니지만 노랗지 않은 것도 아닌 세계(혹은 노랗지만 푸른 기운이 감도는 세 계)도 있다. 이러한 세계는 ‘그저 그렇다’의 판단처럼 저 유명한 형 식논리학의 배중율에 반反한다. 반면에 이러한 세계는 대칭삼분법적 논리를 적용할 때 쉽게 파악된다. 절대 섞이지 않을 붉은색과 검은 색을 하나의 대상에 함께 적용할 때 비로소 표현되는 세계는 대칭 삼분법을 적용할 때 비로소 충분히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는 대칭삼분법이 오랜 역사과정을 통해 제 3지대를 발달시켜온 동양사회의 경험연구에 특히 유용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동안 이 러한 경험연구의 영역이, 마치 선도仙道의 세계에 대한 무관심 내지 경시풍조처럼, 기존의 서구 사회이론에 의해 신비주의로 심각하게 왜곡되거나 아예 무시되기 일쑤였다. 대칭삼분법의 인식틀은 바로 이러한 세계를 재발견하거나 학문적으로 복원하는데 용이할 것이다. 실제로 필자들은 최근 심학의 사회학적 재발견을 시도한 바 있는데, 이러한 시도가 축적된다면 한국사회의 실제가 더욱 생생하게 설명 될 것으로 확신한다. 디지털을 닮아있는 이분법의 안경은 0과 1, 흑 과 백 밖에 보지 못한다. 중중무진의 세상에서 계속해서 이 안경을 쓰고 있는 것은 단순한 태만을 넘어 삶과 세계를 왜곡시키는 지적 폭력의 전조일지도 모른다.

Notes

[1]물론 서구의 형식논리학으로부터 유래된 이분법적 사회이론이 곳곳에서 근본적 인 한계를 드러냄에 따라 그 대안으로 삼분법적 사회이론이 일부 시도되었고, 현재도 그런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현상학적 전통, 소통이론, 구조화이론, 그리고 최근의 일부 포스트모던 이론이 대표적 사례들이다. 그러나 필자들이 보기에 그러한 시도들 역시 근본에 있어서는 이분법적 틀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반면 연기법은 이미 기원적으로 대칭삼분법적 인식틀을 배 태하고 있어 뚜렷이 구분된다고 할 수 있다.

[2]대표적으로 루만(Luhmann, 1995)은 자신의 저서 『사회체계론』에서 이러한 익숙 한 시도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3]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박찬국(2015)을 참고하기 바란다.

[4]다만 루만은 사회적 체계와 심리적 체계는 물론 사회적 체계인 현대사회의 다 양한 기능체계들도 구조적으로 연동되어 공진화하면서 각자 자신의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소통을 통해 자신의 체계를 자기준거적으로 재생산해 나간다고 주장 한다. 구조적으로 의미의 지평과 무관하지 않은 사회적 체계와 심리체계는 의 미를 매개로 구조적으로 연동되어 공진화하고 있으며, 현대사회의 사회적 체계 들도 저마다 자기준거적 재생산을 거듭하면서 작동해 나간다는 것이다.

[5]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우실하(2012)를 참고하기 바란다.

[6]참고로 포퍼(Popper)의 ‘세계 3’은 물리적 세계(세계 1)와 정신적 세계(세계 2)와 구별되는 사회적 세계로서 여기에서 논의하는 3자와는 차원이 전혀 다르다.

[7]이는 하이데거가 현존재의 의식의 범주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해 사용한 표현 인데, 여기에서는 필자들도 그 구분의 필요성을 인정하여 그의 개념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하이데거의 이 개념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박찬국(2015)을 참고하 기 바란다.

[8]이는 레비나스(Levinas, 1998)의 타자철학, 즉 절대타자로서 신을 전제할 때 오히 려 무조건적인 사회적 관계가 가능하다는 철학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논의는 윤대선(2017)을 참고하기 바라며, 레비나스와 유사한 입장 에서 배후원인으로서 신의 존재를 필연화하는 마틴 부버(Buber, 1995)의 해석도 참고해볼 수 있다.

[9]이렇게 보면 이태극과 삼태극의 의미론적 차이는 없다고 볼 수 있다.

[10]이러한 사유는 동양사상뿐만 아니라 하이데거의 존재철학은 물론 앞서 살펴본 레비나스의 타자 철학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으며, 그러한 점에서 보편성의 지 위를 갖는다. 화엄사상을 통해 이를 잘 해명하고 있는 김형효(2002)를 참고할 수 있다.

유승무

는 한양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한양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는 중앙승가대학교 불교사회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불교사회학(2010)』이 있으며, 공저로는 『현대사회의 위기와 동 양사회사상(2016)』, 『오늘의 사회이론가들(2015)』, 『사회학적 관심의 동양 사상적 지평(2014)』, 『현대사회와 베버 패러다임(2013)』, 『한국민족주의의 종교적 기반(2010)』, 『유교적 사회질서와 문화, 민주주의(2005)』 등이 있다.

최우영

은 연세대학교 학부와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하였으며, 현재 전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관심분야는 사회사상, 종 교사회학 등이며, 공저서 『한국의 사회자본(2008)』, 『현대사회의 위기와 동양사회사상(2016)』 외에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를 통해 본 한국사회의 종교 갈등”, “조선시대의 국가-사회관계와 가족주의의 기원”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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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황태연 『감정과 공감의 해석학 1,2』 2015 청계

25.

C.Cooley Social Organization: a Study of the Larger Mind 1909 Scribner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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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C.Cooley Sociological Theory and Social Research: Being Selected Papers of Charles Horton Cooley 1930 Henry Holt & Co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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