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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지중해론과 한국문명의 가능성: 문화변동론적 관점에서*

 

Abstract

이 연구는 한국 근대의 특징을 문화변동론적 시각에서 살펴보고 동아 시아에서 한국문명의 가능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한국은 문화변동론에 의하면 변동의 도입경로, 변동에 대한 저항의 정도는 동아시아의 중국과 북한과 비슷하였으나 선택의 메카니즘이 달라지고 지위와 역할의 변동 이 나타나 시민혁명을 몇 차례 겪은 후 거의 서구사회에 동화되고 있다 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일본은 천황제를 통하여 서구 문명에 큰 저항 없 이 산업화되었으나 그 실상은 근대화라고 보기 어렵다. 한국은 개신교 기독교가 근대화 메커니즘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으며 한국의 기독 교가 차지하는 인구가 27.6%나 되어 중국, 일본과 비교하여 압도적으로 높다. 이는 일본의 ‘천황제’, 중국의 ‘당황제’, 북한의 ‘어버이수령제’를 대 신할 수 있는 하나의 이념라고 볼 수 있다. 민족(ethnic group)의 가치를 중시하는 ‘천황제’, ‘당황제’, ‘어버이수령제’는 동아시아의 평화보다는 갈 등과 전쟁을 가져올 위험성이 크다. 특히 경제적 번영을 경험하고 있는 동아시아 3국은 향후 인구 급감을 경험하게 됨으로 해서 동아시아 이외 로부터의 외국인 인구의 유입이 이루어질 때 성령, 사랑, 창조, 공동체의 한국 기독교가 다문화의 중심이 되는 동아시아 지중해 문명의 허드 (hearth)을 제안하고자 한다.

Translated Abstract

This study suggests the ideas toward East Asia’s Mediterranean Korean Hearth focused on the cultural change theory. The theory gives insights about Korean cultural change of westernization, affected by South Korea's civil revolution and christianity. Japan and mainland China, North Korea became the mal-westernization society based on the the personality cult which will give cause for some reoccurrence of China-Japan war, Korean-Japan war. Korean Christian and missionaries grown up to be major group, comparing with other countries. In next decades the population of east Asia's countries will decrease rapidly, and to overcome the problem of multi-cultural society they have to be changed as an open and multiple society. The christianism can lead to the society and become the East Asia’s Mediterranean Hearth of Korean Modern civilization.


머리말

I.

연구목적

1.

구한말 중화의 질서 속에서 스스로 문명국임을 자부하고 있던 중 국과 조선은 제국주의의 침탈에 맞서 독립국가의 건설과 강자의 길 을 걷기 위하여 서구 문명을 추구하게 되었으며 시련도 거쳤지만 상 당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하겠다. 중국, 조선보다 일찍 서구식 문명을 추종한 일본은 서구와 동등할 수 없다는 인식과 동아시아에서의 유 일한 ‘서구문명국’임을 표방하는 이중적 콤플렉스를 안게 되었다.

구한말 조선의 지식인들은 ‘문명’의 개념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개 화’, ‘개명’ 나아가 ‘자강’, ‘물질문명’등으로 설정하였으며 ‘문명’자체 를 새롭게 정립하려는 시도가 나타났으니 ‘도덕’을 핵심적인 부분 으로 재구성하려한 노력도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를 실현할 만한 역 량을 키우지 못한 가운데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게 되었으며 한국 전쟁이라고 하고 민족 전쟁의 시련을 겪게 되었다.

분단된 가운데 북한이 ‘김일성 유일체제’라고 하는 세계사적으로 유래가 없는 폐쇄된 체제를 걷게 되는 가운데 남한, 이른바 대한민 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실현하는 번영을 이루었다. 대개 1954년 휴 전 이후 2014년까지의 60년 동안 자동차, 조선, 전자, 화학, 기계 등 대규모 장치산업에서의 ‘규모와 범위의 경제’로 특징짓는 성공을 가 져왔다. 1995년 WTO의 출현 이후 IMF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기까 지의 개방체제를 이루었으며 대중문화의 한류 확산으로 말미암아 ‘한국의 문명 가능성’이라고 하는 실체와 영향력을 보여주게 되었다. 2008년의 세계적 금융 위기 속에서도 시민의 자유와 평등, 민주가 실현되었으니 이것은 식민지도 아니며 타국의 식민지 침탈 과정 없 이 이룩한 문명으로 세계적인 모범사례라고 보겠다. 산업화, 개방화 와 시민사회의 성립으로 특징짓는 ‘한국근대문명’은 향후 후발문명 으로 등장한 중국과의 관계 설정 속에 ‘문명’의 개념을 새롭게 설정 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으니 문화다원주의, 민족적 국수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한국문명의 새로운 정립 시도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 다.

새로운 정립은 한반도를 ‘동아시아 지중해론’의 입장에서 로마문 명의 ‘지중해론’과 같은 맥락에서 다루어보아야 하는 것이다. 유럽의 지중해 패권을 둘러싼 로마제국의 흥망이 유럽사회와 세계에 미친 영향을 생각해볼 때 지중해론은 동아시아의 한반도에 적용해 볼 가 치가 있다1). 카르타고와의 포에니 전쟁 후 로마의 성공은 오늘날 산업화에 성공한 한반도의 한국과 사정이 비슷하다. 동아시아는 사 할린섬, 일본의 홋카이도, 혼슈, 큐우슈우, 난세이제도, 타이완 섬 등 으로 이루어진 열도에 의하여 둘러싸인 내해가 한국해, 황해, 동지 나해에 의하여 연결되어 있어 지중해라고 일컬어도 문제가 없어 보 인다. 이들 바다가 동아시아지중해라고 한다면 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세아니와의 교류가 있는 가운데 한국이 지중해 문화 허드(culture hearth)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이 연구는 한국 근대문명의 특징을 문화변동론적 시각에서 살펴 보고 동아시아 지중해에서 한국문명의 가능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다시 말해 이 연구는 한국 근대문명의 특징을 문화주의적 시각에서 살펴보고 동아시아에서의 가능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향후 동아시아 지역 공동체의 논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중국, 일본, 북한, 한국 등이 함께 평화와 반영을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이며 이는 다문화의 문명 기반 위에서 논의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중국, 일본, 한국은 향후 20년 내에 노령화와 인구 급감 의 도전을 받게 되고 이는 동남아시아나 인도, 서남아시아로부터의 이민유입에 의하지 않고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워졌기 때 문이다.

연구동향

2.

동아시아에 관한 학술적 논의는 동아시아 담론이라는 이름으로 2000년대 중반까지 10여 년 동안 한국 지식계의 주목을 받아왔다(윤여일, 2014, 74). 윤여일에 따르면, 동아시아, 동북아시아, 동아시아·태 평양, 동양· 극동 등을 주제로 담은 동아시아 관련 특집호가 압도적 이고, 동아시아를 주제로 담은 특집호가 그 다음으로 많다고 『사상』 55호의 내용을 소개하였다. 이 특집호에 따르면, 동북아는 주로 지 정학적·지경학적 차원에서 거론되는 지역용어로 사용되고 동양의 경 우는 자문화적 속성이 뚜렷하다. 문화, 문명, 모더니티, 정체성, 융 합, 철학, 사상 등이 함께 사용되는 개념들이다(윤여일, 2014: 75).

동아시아라고 하는 화두는 1990년대 초 탈냉전의 국면에 접어들 면서 부상하였다. 「세계 속의 동아시아, 새로운 연대의 모색」(『창작 과 비평』, 1993)에 수록된 “탈냉전시대와 동아시아적 시각의 모색” 이라고 하는 논문이 이를 말해준다. 동아시아적 시각이란 무엇일까? 윤여일에 의하면, ‘변방적 경직성’에서 초래된 반소, 친소, 반미, 친 미, 자본주의, 사회주의와 같은 이분법을 벗어나 자신만의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동아시아 담론의 등장은 1990년 대 중반 이후이다. 동아시아 담론은 세계화와 지역화, 근대화와 탈 근대, 종속과 탈식민, 민족주의와 탈민족주의, 전통화 현대, 문명의 충돌과 동양적 정체성 등이 폭넓게 접목되었다.

이렇듯 서양 중심적 근대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동아 시아 담론이 확장될 수 있었지만, 인문학자에 의한 논의는 1990년대 중후반 이후이다. 이 시기에 동아시아 발전론으로 명명할 수 있는 담론이 부상하여 동아시아 발전론은 유교자본주의, 아시아적 가치 론, 동아시아 발전국가론 등이 포함되는데 공통점만큼이나 차이점도 존재하며 논의가 더욱 활성화 되었다.

이 중에서 유교자본주의 가치론은 서구 중심의 보편주의를 상대 화하는데 크게 기여하였지만, 1990년에 출판된 「공자가 죽어야 나라 가 산다」(김경일, 2001)는 비판에서 확인할 수 있듯, 비판론도 만만 치 않았다. 유교자본주의론, 동아시아 발전국가론 등은 내적 논리가 다르지만, 모두 경제적 성장을 배경으로 자본주의 세계 체제를 받아 들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고, 2000년대 이후에는 지역주의 시각에 서 환발해만 경제권, 황해 경제권, 환일본해 경제권 같은 국제적 협 력체 구상이나, 아태지역을 포괄하는 광역단위의 협력 논의가 존재 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이 시기의 동아시아 담론에서 일어난 중요한 변화는 지역주의론의 부상이다. 2000년대 중반에는 동아시아 담론이 상당히 쇠퇴하고 동북아 시대의 구상이 정치계에서 추진력을 잃게 되며 동 아시아 담론은 지위를 상실하고 방향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동아시 아 담론의 이행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는 지역범위의 변화양상은 문화적 동질성에서 경제적 연계로 바뀌어 나갔고, 동아시아의 지역 범위가 보다 명료하게 구획된 외연을 갖게 되었지만, 동아시아 지역 공동체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는 소멸되었다 (윤여일, 2014).

새뮤얼 헌팅톤의 문화변동론과 한국에의 적용

II.

문화결정론과 문화변동론

1.

새뮤얼 헌팅톤은 근대화와 민주화는 동일한 것이 아니라고 하며, 근대화 자체는 산업화라고 하는 물질문명의 변동을 뜻하지만 민주 주의라고 하는 정치적 삶의 양식은 물질문명과 근본적으로 무관한 정신 문명적 요소라고 하였다(헌팅턴, S. P., 1996: 29-30). 민주주의는 서양에서 비롯된 자유주의 정치 혁명의 산물이며 서양 문명적 요소 라고 하며 그는 일곱 가지를 요약하였다(이삼성, 2009: 768-770). ➀ 그리스-로마 고전시대의 문화유산이다. ➁ 기독교 문명이다. ➂ 유 럽의 언어들이다. ➃ 서양 역사에서 교회의 권위와 세속적 왕권이 분리되어 공존함으로써 정신적 권위와 세속적 권위가 이원적으로 구분되어 왔다. ➄ 로마사회에 기원을 두고 있는 ‘법의 지배’라는 전 통이다. ➅ 사회적 다원주의와 그 표현으로서의 길드 등 시민사회의 존재이다. ➆ 9세기 이후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도시자치의 전통이 유럽전역으로 확대되면서 일찍부터 의회를 비롯한 대의기구가 발전 한 점 등이 그것이다.

헌팅턴은 중국, 인도 등 비서양세계가 서양처럼 근대화라고 하는 물질문명의 변동을 성공시켰다 하더라도 정신문명의 영역인 민주주 의적 삶의 양식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으므로 서양의 자유주의 적 가치관은 오늘날 보편성을 지니지 못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산 업화를 포함하여 경제사회적 변동과 함께 서양의 전통적 문명에만 존재하는 고유한 문화적 요인들이 결합하여 자유주의 혁명이 서양 에서 일어났다고 보아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는 세계적으로 보편화될 수 없는 서양문명의 고유의 ‘서양 예외주의(Western exceptionalism)' 라 고 역사해석을 그가 한 것이다(이삼성, 2009: 144).

그렇지만 서양이 중시하는 자유와 인권이 오늘날 보편타당하다고 생각하므로 과연 비서양세계는 서양의 이러한 고유한 문화 요소를 수용하여 변동될 수 없을까? 일반적으로 문화변동이란 변동의 도입 경로, 변동에 대한 저항의 정도, 선택의 메카니즘, 지위와 역할의 변 동, 동화, 재해석, 제설혼합, 재생운동 등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고 하는데, 옥한석은 강화도 지역의 기독교 감리교의 전래와 양명학의 하나인 하곡학과의 문화접변을 연구하면서 기독교 감리교가 가법을 중시하는 문화적 전통을 타파하지 못하고 혼합주의(syncretism)양상을 띠었다고 하였다(옥한석, 2014). 이는 서구의 기독교 전통이 한국에 서 재해석된 경우를 말한다.

아무튼 동아시아의 중국, 일본, 한국, 북한은 근대화와 서구문명의 수용에 있어 제각각 다른 길을 걷고 있어 일본, 중국, 북한, 한국의 경우를 각각 차례대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 이들 나라와 달 리 수차례의 시민혁명(4.19혁명, 6월민주항쟁)을 겪은 바 있어 동아 시아의 어떤 다른 국가보다도 서양의 자유주의적 가치관에 접근하 였다고 본다. 이에 한국이 유럽의 지중해 지역이 이룩한 로마문명과 같은 역할을 다음 세기에 할 수 있을지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 다. 문명이란 일정한 지리적 범위를 가질 수 밖에 없고 문화 허드 (culture hearth)가 고려되는 것이다. 스펜스 J.는 문화 허드란 문화적 전통이 안정적으로 형성되어있고 인간의 생활양식이 해당 문명권 내에 인간의 당연한 생활수준을 규정하며 생활에 각종 규범과 규칙· 기술공학·전통·제도 등을 외부지역으로 공급하는 중심지를 말한다고 하였다(임덕순, 1990: 267). 한국이 바로 동아시아에서 이러한 문화 허드의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을 계기로 봉건체제로부터 근대체제로 변화하게 되었다. 새로운 근대국가 질서는 군사조직과 교육이 중요 하다고 보고 충성심, 훈련, 복종, 및 ‘이기적인 개인주의’를 없애는 방향으로 양성하는 일이였다(이안 부루마, 2004, 57). 동시에 메이지 시대의 국민의식은 정치적 권리에 기초하지 않고 천황숭배에 뿌리 를 두었다. 사무라이 대신에 징집된 군대와 천황숭배가 근대적 요소 가 된 것이다. 그 이전에 천황은 최고의 신으로 숭배되지 않았고 에 도 막부 시대말까지 교토에 살면서 문화를 육성시키며 일본 관습과 정신의 상징으로서 신토는 국가 종교나 우상이 아니고 일본의 탄생 을 가져온 신들, 다산, 자연의 축복, 계절의 축제, 애니미즘적 의례 의 집합에 불과하였는데 메이지시대에 들어와 국가 종교가 되었다 (이안 부루마, 2004: 60)2).

이는 문화변동의 관점에서 보면 산업화라고 하는 서구화가 진행 되면서 민주주의보다는 ‘천황제’라고 하는 선택의 메커니즘에 의하 여 군국주의가 대신하게 되었다고 본다. 메이지천황과 다이쇼천황에 이어 등장한 쇼와천황은 1928년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 의 신궁에서 신으로 태어난 다음 도쿄에서 군복을 입고 3만 5천의 군대와 두 대의 항공모함, 208대의 전투함, 및 39대의 잠수함 등의 천황 함대를 사열하는 전쟁의 신이 된 것이다. 그 후 태평양 전쟁에 서 패배한 일본은 전쟁의 최고신인 천황을 전범으로 처단하지 않았 으며 전전과 같지 않지만 일본인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신으로 남아 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중국은 근대 체제로의 변화가 한족의 만주족 타도로부터 비롯되 었다. 쑨원은 서구 열강제국으로부터 중국을 근대화시키기 위해서는 이민족에 의하여 지배되고 있는 ‘정의롭지 못한 천하’를 정상적인 질서로 되돌려야 한다는 1911년 신해혁명의 중심 인물이 되어 한족 중심의 민족 혁명을 일으켰다. 오랑캐와 구별되는 중화민족의 형성 이 ‘민족주의’라고 설명되는 신해혁명은 그 후 중화민국 및 중화인 민공화국의 등장을 가져왔고, 이는 황제를 정점으로 하는 전제주의 통치의 종언 대신 한족이 영역 내의 다양한 이민족을 지배, 통합하 는 ‘중화제국’으로 변질되어 오늘에 이른다. 중국 공산당의 창설자인 천두시우 조차 국민당이나 공산당 독재를 당에 의한 전제체제인 ‘당 황제’라고 비판한 것을 보면 오늘날의 중국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중화민족주의에 함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화와 산업화로 대변되는 근대화는 중국의 경우 초기에는 서 구 열강에 저항하기 위한 민족주의가 이념으로 자리 잡았으나 한족 중심의 이민족 차별, 공산당 일당 독재 체재로 지위와 역할의 변동 을 거쳐 재해석 되었던 것이다. 1980년대 이후 중국의 ‘시장식 사회 주의(market socialism)’에 의한 산업화가 상당한 성과가 이루어져 물 질문명의 변동이 이루어졌지만 민주주의라고 하는 정치적 삶의 양 식이 자리 잡지 못한 가운데 정신 문명적 요소가 시민의 인권과 자 유를 바탕으로 한 이념이라고 보기 보다는 ‘화이지변’과 ‘대일통’의 전근대적 사고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북한은 대한민국과 거의 동시에 19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란 이름으로 근대국가가 탄생하였다. 일제 강점기 아 래에서 3·1 운동에 힘입어 탄생한 상해임시정부와 달리 <조선민주 주의 인민공화국>은 항일 무장독립 투쟁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민 족주의와 공산당의 이념이 결합한 근대화가 이루어졌고 1972년 ‘김 일성주의’라고 하는 주체사상으로 근대화가 변질되었다. 김일성은 ‘주체사상이란 한마디로 말하여 혁명과 건설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혁명과 건설을 추동하는 힘은 인민대중에게 있다는 사상이다’라고 하여 서구식 민주주의에 근접하는 이념인 것처럼 보이지만 ‘인민대 중은 당의 영도 아래 수령을 중심으로 조직 사상적으로 영생하는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를 이룰 때 역사의 자주적 주체가 된다’고 하여 주체사상은 혈연론으로 발전하여 김일성 부자 세습체제를 정 당화시켜 ‘어버이수령제’라고 하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주체종교 정 치체제가 되었다(김창순, 1997).

한국에의 적용가능성

2.

근대 일본의 ‘천황제’, 중국의 ‘당황제’, 북한의 ‘어버이수령제’와 달리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 근대국가 체제가 수립되었다. 즉, 근대국가수립의 초기에 종족적 근대국가론(ethnic nationalism)과 시민 적 근대국가론(civic nationalism)이 서로 대립하였으나 미·소 양 진영 의 대립을 직시한 이승만에 의한 시민적 근대국가가 탄생하게 되었 다. 이승만이 자유·보통·평등·비밀·직접의 선거를 실시하여 수립한 시 민적 근대국가의 성공은 지난 70년간 동시에 실현된 세계사적 희귀 한 사례이다. 대한민국 수립 이후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북한과의 체 제 경쟁에서 뒤처지는 듯 하였으나 이후 일어난 1961년 5월 16일의 군사정변은 20년간에 걸친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추진하여 물질생활 의 기반을 마련하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비록 특정 계파와 개인에게 자원이 배분되는 맹점을 지니게 되었지만 이는 4·19 시민혁명, 6·10 민주 항쟁 등에 의하여 자유와 인권의 신장으로 어느 정도 해소되 었다.

대한민국은 변동의 도입경로, 변동에 대한 저항의 정도는 중국이 나 북한과 비슷하였으나 선택의 메카니즘이 달라지고 지위와 역할 의 변동이 나타나 물질주의와 개인주의가 자리잡아 거의 서구사회 에 동화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3). 선택의 메커니즘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이 바로 개신교 기독교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옥한석, 2014). 대한민국의 수립의 정신적 뿌리가 되는 대규모 독립 운 동 3·1 운동은 주동자 33인 중 개신교 기독교인이 다수를 차지하여 기독교와 관련지어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서구 근대문명의 일곱 가지의 요소 중 기독교 문명, 정신적 권위와 세속적 권위의 구분, 법의 지배 전통, 시민사회의 존재, 대의기구의 발전 등의 요소가 한 국 사회에도 갖추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8·15 해방 이후 남하한 북한의 서북파 개신교 기독교인들에 의한 전쟁 수행과 전후 복구가 이루어지고 이후 이들이 가족계획 등 경제개발5개년계획의 수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개신 교가 중심이 되어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확립되었다는 주장이 등장하기에 이르렀다(윤정란, 2015: 217–257). 특히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남한을 공산주의 세력으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 념으로부터 경제적 부를 달성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사명이라고 주 장하였다(윤정란, 2015: 311). 이후 개신교가 한국에서 주류 종교로 자리잡게 되어 일본, 중국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되었음은 사실이다.

한국근대문명론과 동아시아 지중해론

III.

한국근대문명론

1.

한국문명론은 김정의(2006)에 의해서 18세기 후반부터 오늘에 이 르기까지 잘 연구, 정리되어 있다. 그에 의하면 18세기 후반에 실학 자들 간의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면서 19세기 초·중반의 이규경·최 한기 등의 서학수용론 등이 나타났다고 하였으며, 개항기에는 유길 준의 「경쟁론」, 박영호의 「개화소」, 서재필의 「문명진보를 위한 계 몽활동」, 김윤식의 「개화설」 등으로 정리되었다. 특히 김윤식은 “개 화란 변방미개민족의 거친 풍속이 서구의 풍속을 돕고 점차 고쳐나 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지적하여 조선의 문화적 자부심과 유 교에 대한 긍지를 견지한 점이 돋보인다. 구한말 조선은 개화냐 아 니면 주체냐 하는 찬반의 양론 속에서 일제강점기 윤치호, 이돈화, 안확 등이 거론되었다.

해방 이후, 한국문명론이란 주장을 하면서 그 당위성으로 첫째, 한국문명이란 말을 할 수 있을까, 둘째, 학문의 세분화에 따라서 통 합된 학문으로 발전되야 하는가, 셋째 문명론에 관한 정착 필요성이 요청되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한국문명론의 연구가 이제 시작되었 다고 하였다(김정의, 2006, 13-16). 그는 한국에 있어서 원효의 원흉 무애, 최제우의 동귀일체, 박은식의 대동주의, 박이문의 생태중심주 의가 진정한 의미의 아이콘이라고 세계인에 제언하고자 하였다 (김정의, 2006 :18). 한국 자체의 문명론에 관해서는 정도전과 이색과의 비교를 통해 정도전이 조선의 문화를 보편적 기준에 맞추면서 국가 적 지향점을 기자전통의 계승과 문명교화의 실천으로 잡아나갔다고 하였다(최봉준, 2014, 2015).

한국문명론은 또 다른 면인 서구 패권주의적 이데올로기로의 경 향에 대하여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전홍석, 2009). 이는 서구 문명쇼 비니즘에 입각한 후쿠야마와 헌팅턴의 문명론에 대한 비판을 바탕 으로 ‘상호주체적 평등관계를 기초로 한 범인류중심의 유기체적 세 계주의 문명관’(전홍석, 2009)에 대한 각성이 특별하다고 하였다. 인 간이 자연과의 유기체적 관계 속에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듯이 한 문명권도 타문명권과의 유기체적 관계 속에서 생존과 지속적인 발 전을 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홍석(2009)은 다음 5가지 원칙을 상 정해 보았다.

첫째, 포괄적인 문명관으로서의 합당성, 둘째, 다원주의적 문명관 으로서의 합당성, 셋째, 개별문명의 이상실현이 될 상위개념의 보편 성, 넷째, 편협주의와 일반주의로부터 탈출된 균형성, 다섯째, 제국 주의와 패권주의 속성으로부터 벗어난 인류평화와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문명관으로서의 합당성을 제시하였다. 그는 동서관념, 인종 주의, 선민의식, 빈부의 귀천, 특권의식 등과 같은 타자에 대한 이항 대립적 차별의식이 부식되고 타자와의 호혜적 의존을 통한 모든 사 람이 사람다워지는 행복추구가 담보되어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동아시아지중해에 입각한 하나의 문명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중국 의 중화주의, 북한의 김일성주의, 일본의 천황주의 등은 문명의 중 심이 될 만한 아이디어와 관념은 없다. 단지 신흥산업지역으로서의 위상이 굳건해졌으므로 물질적인 성과가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세 계사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대결 구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동아 시아는 새로운 하나의 문명론이 실현될 가능성이 큰 지역이다. 전근 대시대에는 중화문명 혹은 유교문명·한자문명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불리웠던 일을 상기한다면 신 동아시아문명론이 불가능한 일도 아 니라고 본다.

동아시아지중해론

2.

동아시아는 한반도와 동해, 황해, 동지나해 등으로 둘러싸여 있어 유럽의 지중해와 비슷한 지리적 특징을 가지고 있어 문명의 교류와 변용이 동아시아에도 부단히 이루어져 왔다고 생각된다. 동아시아가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은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면 중화사상이 지배 적인 문화라고 생각될 수 있겠지만 불가사상, 유가사상 등이 동아시 아를 오랫동안 지탱해온 가치로서 ‘화이부동’이 다문화사회의 대립 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대안으로도 제시되기도 하였다(김정탁, 2014). 동아시아가 다문화 체제로서 다양한 문화의 상호교류와 교섭 이 이루어지게 된다면 유럽의 지중해문화와 같은 수준에서 논의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최근 동아시아의 공동체의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중국과 일 본의 경쟁 그리고 중국과 미국의 대립은 동아시아 지역 공동체 파 괴에 대한 두려움도 나타나지 않을 수 없다.4) 동아시아의 지역주의 가 활성화 될 수 있는 돌파구를 한중일 협력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보는데, 한중일 협력은 동아시아협력을 주도할 수 있는 중추세력의 형성을 의미하는 동시에, 동아시아의 글로벌 영향력을 강화하고 글 로벌 질서형성과 책무의 원활한 수행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보기 도 하였다(최영종, 2012).

동아시아의 지역주의 중에서 한국은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할 것인 가? 한국이 동아시아의 지역을 통합하는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AD 828년 신라 청해진의 설치는 통일신라의 동아시아 교역사 의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하는 것이 밝혀졌다. 장보고를 청해진 대사로 임명하여 민간 상인들의 교역을 관리·조절함으로써 효과적인 동아시아 교역정책을 수행하게 되었는데, 이는 ‘당-신라-일본’을 잇 는 교역망이 운영되는 시스템이 당시에 형성되었던 것이다. 그 시스 템에 의하여 아라비아·동남아시아 등의 희귀 사치품과 중국의 선진 문물을 사들이고, 이를 다시 신라와 일본의 귀족에게 파는 한편, 아 라비아와 일본의 원료물품을 신라 수공업자에게 제공하고 이를 가 공하여 중국과 일본으로 되파는 방식의 교역활동이 전개되었던 것 이다(박남수, 2011).

고대에 있어서 통일신라가 중국과 일본, 멀리 아라비아와의 교역 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사실은 동아시아 지중해론을 뒷 받침하는 사실이다. 최근 한국은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여 2020년 이후 동지나해의 공해상에서 발생하는 한국 선박의 피습에 대한 보호에 대한 대비를 하게 되었다. 동지나해 상의 선발주자인 일본과 중국과 다른 접근법이 필요한데, 과연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협력방안이 무엇인가를 강구하기 위한 지역연구가 필요한 것이다(박영준, 2013: 380).

다문화사회를 지향하는 기독교 중심 문명론의 가능성

3.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에 개신교기독교가 어떤 역할을 하였을 까 하는 문제가 한국 기독교중심 문명론의 핵심이다. 한국전쟁을 치 루면서 미국의 원조에 의존하던 한국경제는 1960년대에 들어와 북 한의 ‘김일성주의’가 남한보다도 더 괄목할 만한 경제 성장을 이루 어내게 되자 가장 각성을 받은 사회집단은 기독교 세력이었다. 이른 바 한반도의 서북지역 출신 월남기독교인들은 경제발전이야 말로 한반도에서 기독교의 존립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각성하고 5·16 군사정변 세력과 손을 잡게 되었던 것이다. 군사정변 세력의 주축은 육사 8기생이었는데 이들은 대부분 서북청년회출신이었던 것이다(윤정란, 2015: 246-257).

구 전통사회에서 소외되었던 서북지역은 조선왕조의 역사를 부정 하고 단군의 역사를 강조하여 민족주의를 고양하였으나 북한의 기 독교 핍박을 피하여 월남인들이 되고, 이들의 자녀들은 1947년 이 후 조선경비학교, 이른바 육군사관학교의 5, 7, 8, 9기생이 된 후 특 히 5기와 8기가 5·16 군사정변의 주역이 되었던 것이다5). 정변에 성 공한 후 이들은 국립대학에 진학하고 미국의 원조교육을 받았으며 각종 정부 기구에 참여하여 1960년대 초반 정치엘리트 중 남한 내 북한 출신이 차지하는 비율이 거의 10배나 되었다. 군사정변의 국제 적인 승인을 위하여 서북 월남인 기독교 대표자인 한경직이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던 <한국선명회> 합창단을 이끌고 미국 순회공연을 하였으며, 미국복음주의의 대표인 빌리 그레이엄을 초청해 대대적 인 부흥회를 개최, 한국 개신교 기독교의 성장 계기를 마련하였다 (윤정란, 2015: 247-252)

5·16 군사정변은 이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착수하였는데 그 계획 중 하나가 ‘가족계획사업’이다. 이에 의한 인구억제정책은 1962년에 시행된 이후 1980년까지 강화되었으며 1996년 6월에 폐지 되었다. 한국의 개신교 기독교인들은 남한을 공산주의 세력으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한국 사회의 근대화에 큰 영향을 미친 가족계획사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였고 경제적 부를 달성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사명이라고 주장하게 되었던 것이다(윤정란, 2015: 311). 기독교 여성들은 다른 여성과 마찬가지로 다산의 관념이나 남 아 선호 사상, 「성서」의 생명윤리 등에 입각하여 초기에는 소극적이 었으나 「구약성서 창세기」의 오나니즘6)에 의하여 피임이 이루어지 게 되었다.

기독교 세력이 군사정변 세력을 옹호한 것은 그 후의 독재가 인 권유린과 탄압을 가져왔다는 점을 생각할 때 기독교가 하나의 문명 허드가 되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기독교 세력 의 회개와 자기반성을 통해 1980년대 이후에 기독교가 부흥해나간 다는 점을 생각 할 때, 특히 켈빈이 말한 ‘노동의 소명설‘이 마르크 스의 ’노동소외론’을 대신하여 노동의 가치를 존중한다는 점에서 개 인의 자유와 인권을 기독교적으로 옹호해주게 되었다. 마르크스의 주장은 유물론의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와 함께 자유 로운 창의성이 소홀히 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중국, 한국, 북한, 일본 등으로 이루어진 동아시아의 지중 해론 문명 담론은 한국이 문명의 허드가 될 수 있고 그 근거는 기 독교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유교, 불교, 샤머니즘 등이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중시하는 자유주의적 가치관과 양립되기 위 해서는 사회운동으로서의 실천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기독교가 우선 시 될 수 있다. 한국의 전체 인구 중에서 개신교 19.7%, 불교 15.5%, 가톨릭 7.9%, 무종교 56.9% 등으로 기독교인이 27.6%나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은 불교 18.2%, 기독교 5.1%, 무슬림 1.8%, 민족종 교 21.9% 등이며, 일본은 신교 79.2%, 불교 66.8%, 기독교 1.5%, 기 타 7.1% 등이다(CIA World Fact Book, 2017). 삼국의 기독교 인구 비 율을 고려한다면 ‘천황제’, ‘당황제’, ‘어버이수령제’는 개인보다는 민 족이나 종족(ethnic group)의 가치를 우선시 하게 되며 이는 민족주의 에 경도되기 쉽기 때문에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중시하는 하나의 이념으로 대신하기 어렵다. 특히 개인 보다는 민족의 가치를 중시하 게 되면 동아시아의 평화는 유지되기 어렵다. 따라서 이를 대신할 수 있는 이념이 바로 기독교라고 볼 수 있다. 성령, 사랑, 창조, 공 동체를 의미하는 기독교의 ‘야훼하나님’은 다문화, 평화 및 부의 창 조를 아우를 수 있는 이념이므로 한국의 기독교가 중심이 된 동아 시아 공동체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향후 10년 이내에 한국, 일본, 중국의 동양 3국은 급격한 인구 감 소와 노령화를 경험하게 되므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외국 인 노동자의 유입 밖에 없다고 본다. 그럴 경우 다문화 사회로의 변 동이 불가피한데, 다문화를 가장 유연하게 수용할 수 있는 이념이 무엇인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고 기독교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 다고 본다. 동아시아의 지중해론 문명 담론에서 한국의 기독교가 문 명 허드(hearth)의 중요한 요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기독교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소망교회, 남서울교회, 서초 사랑의 교 회 등을 중심으로 한 대형교회(mega-church)가 중국 선교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장차 일본에의 선교도 강화된다면 한국 기독교문 명론의 가능성이 전혀 실현될 수 없다고 볼 수는 없다.

요약 및 결론

IV.

이 연구는 한반도를 동아시아 지중해론의 입장에서 로마문명의 지중해론과 같은 맥락에서 다루어보려고 한다. 유럽의 지중해 패권 을 둘러싼 로마제국의 흥망이 유럽사회와 세계에 미친 영향을 생각 해볼 때 지중해론을 동아시아의 한반도에 적용해 볼 가치가 있다. 카르타고와의 포에니 전쟁 후 로마의 성공은 오늘날 산업화에 성공 한 한반도의 한국과 사정이 비슷하다.

이 연구는 한국 근대문명의 특징을 문화변동론적 시각에서 살펴 보고 동아시아에서 한국문명의 가능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한국은 문화변동론에 의하면 변동의 도입경로, 변동에 대한 저항의 정도는 동아시아의 중국과 북한과 비슷하였으나 선택의 메카니즘이 달라지 고 지위와 역할의 변동이 나타나 물질주의와 개인주의의 특징이 나 타나 일본보다도 더 서구사회에 동화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일본은 천황제를 통하여 서구 문명에 큰 저항 없이 근대화되었으며, 한국은 개신교 기독교가 메커니즘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보았다. 이는 한국은 문화변동론에 의할 것 같으면 변동의 도입경 로, 변동에 대한 저항의 정도는 동아시아의 중국과 북한과 비슷하였 으나 기독교에 의한 선택의 메카니즘이 달라지고 지위와 역할의 변 동이 나타나 거의 서구사회에 동화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한국의 개신교가 아직 혼합주의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개인의 자유와 인권에 대한 인식은 독재체제에 대한 시민혁명을 여러 차례 경험한 일이 이를 말해준다.

한국의 기독교는 차지하는 인구가 27.6%나 되어 중국의 5.1%, 일 본의 1.5%와 비교하여 일본의 ‘천황제’, 중국의 ‘당황제’ 북한의 ‘어 버이수령제’를 대신할 수 있는 이념라고 볼 수 있다. 민족(ethnic group)의 가치를 중시하는 ‘천황제’, ‘당황제’, ‘어버이수령제’는 동아 시아의 평화보다는 갈등과 전쟁을 가져올 위험성이 크다. 특히 경제 적 번영을 경험하고 있는 동아시아 3국은 향후 인구 급감을 경험 하게 됨으로 해서 동아시아 이외로부터의 외국인 인구의 유입이 이 루어질 때 성령, 사랑, 창조, 공동체의 한국 기독교가 다문화의 중심 이 되는 동아시아 지중해 문명의 요람(hearth)을 제안하고자 한다. 한 국 개신교 대형교회의 중국 등지의 선교활동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혼합주의를 벗어나는 노력이 이루어진다면 다문화, 평화 및 부의 창 조를 아우를 수 있는 한국기독교가 동아시아 공동체의 중심 역할 하게 되어 문명의 허드(hearth)가 될 수 있는 것이다.

Notes

[1] 김정하(2014)에 따르면 지중해는 인종, 종교, 문화에 있어서 다중적 정체성의 바 다이며 다문화의 문명은 내해에서의 관계와 교류 이외에도 이집트, 메소포타미 아, 인도, 중국의 문명권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통해 문명의 세계화를 이룩하였 다고 보았다.

[2]1937년 일본 문부성 발간 『국체의 근본』 이라고 하는 출판물에서 일본인들은 그 들 존재의 근원을 ‘천황에게서 찾으라’고 하였다.

[3]한국사회의 분열주의적 양상은 개인주의와 물질주의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민족주의가 반작용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4]안중근은 ‘동양평화론’에서 여순을 중심으로 한 한중일 공동체 회의 , 공동화폐 등을 최초로 주장하였다.

[5]서북 청년회 출신들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대거 군대에 들어가고 8기생이 많은 수를 차지하면서 5기와 8기는 어느 기보다 나이, 학력, 출신 등에서 동질 적이고 학력이 높았다. 박정희는 1947년 조선경비학교 2기생으로 입교하여 3개 월간의 훈련을 마친 후 소위로 임관, 대위로 진급하면서 조선경비학교 교관이 되어 5기생과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8기생은 1948년 12월 7일 입교했으 며, 1960년 4·19 이후 정군운동을 주도, 거의 70% 이상이 서북 출신으로 군사정 변의 핵심세력이 되었다(윤정란, 2015: 247-249).

[6]구약성서의 『창세기』 38장 8-10절에 의하면 오난이 형수와 잠자리를 할 때 질 외 사정으로 후계자를 얻지 못한 사실을 두고 성교 중절로 임신을 피하는 것을 오나니즘(onanism)이라고 한다.

옥한석

은 서울대학교 학부 및 대학원에서 지리학을 전공하였으며, 1985년 이후 강원대학교 지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현재까지 113편 의 논문과 저서를 출간하고 56회의 국내외 학술 발표를 하였다. 주요 관 심 연구 분야는 지리교육, 산지촌락 발달, 풍수지리, 문화경관, 개신교 기 독교와 문화변동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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