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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통일론에서 시민통일론으로: 민족주의 통일론의 위기와 대안

 

Abstract

지금까지 논의된 대한민국의 통일론은 좌우를 막론하고 민족주의와 민족 동질성의 회복이라는 가치에 그 뿌리를 두고 있었다. 통일과 관련 된 주요 합의문을 살펴보면 민족을 핵심적인 가치로 삼고 있다. 통일과 관련하여 정치적 영역에서 민족의 위치는 굳건하다. 하지만 다른 여러 경험적 연구와 조사를 살펴보면 민족이라는 가치는 명백하게 퇴보하고 있으며 예전과 달리 사회적 연대성을 창출하는 힘도 많이 떨어진 상태 이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의 새로운 세대는 이전보다 개인주의화 되었고 국가가 개인을 동원의 객체로 여기는 것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지 못한 채 추상적인 ‘민족’과 ‘공동체’를 강 조하는 현재의 통일론은 지나치게 집단주의적이고 국가 중심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통일론과 사회 인식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하여 본 연구에서는 국가와 국가의 통일이 아닌 시민과 시민의 통일을 모색 하고자 ‘시민 통일론’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는 민족주의 통일론을 폐기 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민족주의 통일론과 반공주의에 기반을 둔 자 유민주주의적 통일론에서 도외시되었던 시민적 가치를 추가하여 통일론 을 새롭게 제시하는 데 그 목표를 두고 있다. 시민적 가치를 한반도 전 역에 확산시키고 능동적인 개인을 형성하며, 공존을 넘어 공변(共變)을 모색하고 인간 없는 개발주의를 지양하는 것이 시민통일론의 핵심이다. 이와 같은 시민통일론이 잘 정착하게 되면 시민적 가치를 훼손할 수 있 는 극좌나 극우 정책의 등장을 사회적으로 제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통일 담론이 이데올로기 영역이 아닌 전략수립 영역에 집중됨으로 효과 적이고 효율적인 통일정책 수립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Translated Abstract

Nationalism and the recovery of national and ethnic homogeneity have been at the core of unification discourse. We can easily uncover the impact of nationalism and ethnicity through analysis of significant inter-Korean agreements. The position of nationalism is robust both of the left-right spectrum and overall political sphere. Nevertheless, the retrogression of nationalism is apparent. Unlike in the past, it cannot construct social integrity, because South Korea’s new generation is more individualized than its forebears. Moreover, it refuses to be mobilized by the state. In this changed circumstance, the unification discourse, which emphasizes the nation and community, is regarded as outdated and abstractive due to its collectivist and state-centric implications.

To bridge the gap between unification discourse and society’s perception thereof, this study suggests “civic unification discourse”, which seeks unification between citizen and citizen rather than state and state. It is noteworthy that civic unification discourse does not deny or abandon the nationalist unification discourse. Instead, it seeks to renew it by adding the civic values that were missing from earlier national and ethnic-based unification discourse. It strives to spread civic values to the Korean Peninsula, create autonomous individuals, seek active co-change rather than passive coexistence, and avoid inhumane developmentalism. If civic unification discourse is well settled into the society, it can effectively constrain the radical left’s and right’s policies, which could harm civic values. Furthermore, civic unification discourse can contribute to policy implementation, because it can constrain discussion to the strategic arena by reducing unnecessary ideological conflict.


서론 및 문제제기

I.

2018년은 훗날 한반도의 정세가 급격하게 요동치고 새로운 질서 가 태동된 해로 기록될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신년사를 통해 남북관계의 개선과 대화의지를 표명하였고, 이는 평창올림픽 당시 김여정 조선로동당 제1 부부장의 방한으로 가시화되었다. 이러한 여 세로 2018년 4월 27일 제3차 정상회담의 개최와 함께 판문점 선언 이 나왔다. 북미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가운데 갈등이 발생하자 예상 치 못했던 제4차 남북정상회담까지 이루어졌다. 이 기간 김정은 위 원장은 중국을 방문하여 여러 가지 제반 사항들을 조정하였다. 한 차례 우여곡절을 겪고 난 후, 6월 12일에 북미정상회담이 최초로 진 행되어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기초적인 청사진이 마련되었다. 비록 전 세계의 기대에 부응할 만한 합의가 도출되지는 않았지만, 평화와 비핵화를 향한 본격적인 프로세스가 이제 막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향후 지금과 같은 평화 분위기가 지속될 수 있을지는 의 문이지만, 현재까지는 한반도의 당면 문제를 대화와 협상으로 해결 하겠다는 긍정적인 움직임이 유지되고 있다.

남북관계와 외교영역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던 시기에 한국사회 특히 청년 세대는 향후 미래의 통일 정책 수립에 영향을 줄 수 있 는 중대한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것은 평창 올림픽 당시 남북한 아 이스하키 단일팀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청년 세대들이 정부에 큰 불 만을 표출한 일이었다. 당시 정부는 남북관계를 개선한다는 정치적 인 목적으로 남·북 단일팀을 급조하였고, 이낙연 총리가 언급한 바 와 같이 메달권에서 거리가 먼 아이스하키팀을 선정하였다. 정부는 남북한이 하나 되어서 선전하는 감동의 신화를 만들고자 하였다. 하 지만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청년들은 정치적인 이유로 국가대표 자 격을 졸지에 박탈당한 선수들에게 동정하는 입장을 보였으며 정부 에 대해 매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이 사건은 보수언론의 왜곡이 라고 단순하게 볼 수 없는 문제이다. 지난 보수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발생한 청년들의 순수한 분노이자 문제제기 라고 할 수 있다. 청년들은 단일팀 구성과정을 지켜보면서 이를 과 거처럼 민족의 동질성의 회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개인 이 응당 누려야 할 권리를 국가가 부정하게 박탈하는 것으로 간주 하였다. 이것은 1991년 세계탁구대회에서 남북연합팀에 대한 열광적 인 지지와는 전혀 다른 태도이다. ‘민족의 회복’이라는 기치하에 남 북단일팀을 구성하여 사회의 환영과 지지를 기대했던 정부도 이러 한 비판적인 지적에 적지 않게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이 현상을 사회학적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예전처럼 민족이라는 거대담론만으로 사회의 응집력을 형성시켰던 시대는 지나갔다는 것 이다. ‘민족’과 ‘국가’라는 가치 앞에 개인을 부당하게 희생시키는 것 에 대해 한국의 젊은 세대들이 명백히 거부감을 표출하였다. 통일이 란 기본적으로 남북한 사이의 최대공약수를 발견하고 이에 따라 양 측 모두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지난한 작업이다. 따라서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생각하였던 통일의 모습과 2018년 현재 상상하고 계획 하는 통일의 모습은 필연적으로 상이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동 안 남북한 양측 모두에서 경제와 사회, 가치관 등이 크게 변했기 때 문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민족’과 ‘국가’로 상징되는 기존의 통일론1) 을 검토하고 여기서 도출된 사안을 토대로 어떻게 새로운 시대적 가치를 반영한 통일론을 구성할 수 있을 지 모색하고자 한다. 통일 대비를 위한 지식인의 임무는 남한과 북한 양측의 사회변동을 포착 하여 시대에 알맞은 통일론을 구축하는 것이다. 물론 민주화되고 다 원적인 사회에서 하나의 지배적인 통일론을 구축하는 것은 매우 어 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회구성원들이 공감할 수 있 는 통일론이 구축되어야만 불필요한 국론의 분열을 막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일은 궁극적으로 정부의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정책 집행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민족통일론과 자유민주주의 통일론의 기원과 한계

II.

민족통일론

1.

민족통일의 기원

1)

지난 70년 동안 그리고 현재까지도 통일의 궁극적인 당위성은 ‘민 족’의 회복에서 나왔다. 그동안 보수진영2)과 진보진영 모두 민족이 라는 틀 안에서 통일정책을 구상하였다. 이러한 사상의 기원은 백범 김구선생에게까지 올라간다. 해방공간에서 민족의 분단을 막고자 고 군분투하였던 백범 선생은 매우 강력한 종족적 민족주의를 주장하 였다. 그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철학도 변하고 정치·경제의 학설도 일시적이어니와 민족의 혈통은 영구적이다. 일찍이 어느 민족 안에서나 종교로, 혹은 학설로, 혹은 경 제적·정치적 이해의 충돌로 두 파 세파로 갈려서 피로써 싸운 일이 없 는 민족이 없거니와, 지내어 놓고 보면 그것은 바람과 같이 지나가는 일시적인 것이요. 민족은 필경 바람 잔 뒤의 초목 모양으로 뿌리와 가 지를 서로 걸고 한 수풀을 이루어 살고 있다. 오늘날 소위 좌우익이란 것도 결국 영원한 혈통의 바다에 일어나는 일시적인 풍파에 불과하다 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된다”.

(김구, 1997: 424-25)

김구 선생의 견해로는 ‘민족’이야말로 한 공동체의 영원한 생명력 을 제공해주는 모체였다.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김구 선생의 위와 같은 언급은 자민족 중심의 인종주의로 비춰질 위험도 있지만, 평화 적이고 민주적인 가치가 내장되어 있는 주장이다. 하버드 대학교에 서 장기간 교편을 잡으면서 제 3세계의 민족주의를 연구하였고, 대 한민국 제 3공화국 당시 대통령제의 헌법을 자문함으로써 한국과 인연이 깊은 루퍼트 에머슨(Rupert Emerson) 교수는 식민지 치하에서 형성된 국가의 민족주의에는 매우 강력한 민주주의적인 요소가 내 포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식민지배 하에 서 민족주의나 반식민지 운동에 가장 열정적으로 몸을 담았던 인사 들은 전통적 봉건 엘리트가 아니라 서구의 민주주의 가치를 지지하 는 새로운 엘리트층이었다. 둘째, 이들은 민주주의적인 요소를 강조 함으로써 식민지배에 반대하는 세력의 지지뿐만 아니라 비민주적인 봉건적 질서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사회 구성원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Emerson, 1960: 213-37).

과거 일제 식민지 상황에서 ‘민족’은 정치적 기본단위로 인식되었 다. 박명규의 연구에 따르면, 구한말 조선의 지식인들은 ‘국민’이라 는 개념이 근대적·정치적 주권을 지닌 사회구성원을 의미한다는 사 실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제 식민지 통치 아래로 들어가 면서 원래의 ‘국민’이란 개념은 일제의 통치를 받는 주권 없는 사회 구성원이라는 의미로 변질되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치적 주 체로서 ‘민족’이라는 요소를 강조하기 시작하였다(박명규, 2014: 97-9). 식민지 상황에서 ‘민족’은 지배자인 일본인과 대비되는 조선인 이라는 ‘혈통적 집단’의 성격과 비민주적인 식민지배에 대비되는 ‘민 주적 가치’가 포함된 개념이었기에 그 자체로 강력한 사회적 연대를 창출해낼 수 있었다. 이처럼 민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강력하게 남아있었기 때문에 해방 후 대규모의 반탁운동이 진행될 수 있었다. 또한 정치적 주체인 ‘민족’이 외세에 의해 분열되었기 때문에 이를 회복시키고자 하는 시도는 주권과 자주 회복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민족은 현재에도 정치 영역에서 그 정당성을 인정받 고 있다.

‘민족’ 개념의 위기

2)

한국전쟁 이후 ‘민족’은 통일정책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였다. 사실 이승만 대통령은 분단이 공고화되기 시작할 무렵부 터 반공주의적인 ‘일민주의 (一民主義)’를 강조하였다. 하지만 이는 체계적인 사상도 아니었다. 비록 자본주의와 비인간성과 공산주의의 폭력성을 극복해야한다고 주장하였지만 이는 사회민주주의 혹은 훗 날 기든스의 제 3의 길과 같은 성격의 논의가 아니라 정치적 슬로 건에 불과하였다. 또한 여기서 언급된 ‘일민’ 즉 하나의 민족이라는 개념에 기반하여 적극적인 대북정책을 펼치지도 않았다(박찬승, 2010: 226-31). 특히 한국전쟁 이후부터는 북한이라는 집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기에 정치적 주체로서 민족의 역할은 훨씬 더 제한적 일 수밖에 없었다. 김동춘이 지적한 바 있듯이, 분단국가로서 남북 한의 적대적 상황은 남북한의 민족적 동질성과 민족적 정체성의 형 성을 억제하거나 심지어 반국가적인 것으로 취급하도록 만들었다(김동춘, 2000: 349). 즉 반공주의가 강력하게 작동하는 공간에서 ‘이념’ 과 ‘국가’를 뛰어넘는 ‘민족’이라는 것은 매우 불온한 것으로 간주되 었다.

일부 지식인 즉 50년대 조봉암과 같은 용기 있는 인사들이 매우 조심스럽게 ‘평화통일’을 주장하였다. 이는 실현 가능성 없는 무리한 북진통일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공고한 냉전 구조를 민족의 입장에 서 극복하는 것이 평화적인 통일이라는 입장이다(서중석, 1995: 319). 그러나 죽산 조봉암 선생의 비극적인 최후가 증명하듯이 이는 정치 권에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정치적 주체로 서 민족의 영향력이 쇠퇴했다 할지라도, 민족에 대한 사회 성원들의 상상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사회 성원들은 북한을 ‘용 서할 수 없는 민족공동체’로 여겼지만, 북한 체제에 대한 분노와 원 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공동의 운명을 지닌 존재라고 간주하였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악한 북한 지도부’와 ‘선량한 주 민’이라는 이분법적 시각도 이러한 민족공동체라는 관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민족’의 재등장 및 민족통일론의 제도화

3)

한국전쟁과 냉전체제 아래서 억압된 ‘민족’이라는 개념은 국제정 세의 변화에 따라 다시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 들이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고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사회주의 국가들 역시 많은 개혁과 사회적 변화를 경험했고 이에 따라 냉전 구조에도 큰 변화가 발생하였다. 스탈린 사망 이후 흐루 시쵸프는 평화공존론을 제시하였다. 즉 자본주의 국가와 사회주의 국가는 공존할 수 있으며, 의회를 통해 사회주의에 진입할 수 있다 는 것이다(Suny, 2011: 423-25). 그리고 흐루시쵸프의 1959년 미국방 문, 1969년 아시아 국가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자제한다는 닉슨독트 린, 1975년 서방과 공산권간에 맺어진 ‘헬싱키 선언’등을 살펴보면, 냉전 질서는 그 근본적인 갈등구조 속에서도 안정적인 상태에 있었 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국제적 흐름에 따라, 우리의 대북정책 역시 북한을 사실 상(De Facto) 국가로 인정하고 한반도의 평화적 질서를 수립하기 위 해 북한과 협상하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민족’이라는 개념이 적극적으로 호명되었다. 사실 대북·통일 정책은 분단 이후 1970년까 지 북한을 ‘불인정하던 시기’와 1970년 8월 15일 박정희 대통령의 ‘평화통일구상선언’ 이후 북한을 ‘인정하는 시기’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박광기·박정란, 2008: 167; 허문영, 2000: 115). 이는 사회주의를 승인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북한이 실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 고 이에 대응하는 전략을 구축한다는 의미에 가깝다. 후자를 조금 더 세분화하여 1990년대의 본격적인 화해·협력 정책을 포함할 경우, 불인정-인정-화해·협력 시기로 구분할 수도 있다.

이러한 정세 및 인식의 변화는 구체적인 조약과 합의를 통해 나 타났으며, ‘민족’의 가치가 강조되었다. 구체적으로 1972년 7.4 남북 공동성명에서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추구한다는 점 이 명시되었다. 1992년 2월 19일에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 제 15조 에는 “민족 전체의 복리향상을 도모하기 위하여”라는 구절이 정확하 게 제시되어 있다. 1994년 김영삼 정부는 노태우 정부의 ‘한민족공 동체통일방안’을 계승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제안하였다. 물론 국가가 제시한 민족통일론은 전반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이었다고 평 가할 수 있다.3) 즉 정치 주체로서 민족은 국가가 허락하고 설정한 범위에서만 활동할 수 있었으며, 이를 벗어난 행동은 철저하게 규제 되었다.4) 2000년 6.15 정상회담을 통해 공표된 남북공동선언의 첫 조항에도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 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는 점을 명확 하게 밝히고 있다. 2007년 10.4 남북정상선언에서도 ‘민족번영’이 강 조되었고, 최근의 4.27 판문점 선언에서는 ‘민족의 화해와 평화’가 강조되었다.

2018년 현재에도 정부는 ‘민족의 동질성 회복’을 통일의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통일부 소속기관인 통일교육원은 통일의 목표 및 완성을 “사회·문화적 측면에서의 통일은 민족 고유의 동질성을 회복 함은 물론, 보다 다양하고 풍부한 사회·문화적 공동체로 발전됨을 의미한다. 우리 민족은 동일한 언어와 문화, 생활을 공유하며 살아 왔다.…통일은 두 개의 남북한 체제가 하나로 통합되는 것을 의미하 지만 진정한 의미의 통일은 남북한 주민들이 ‘우리 의식(we-feeling)’ 을 가지고 하나의 국가 테두리 안에서 소속감을 공유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통일부 통일교육원, 2018: 10).”라고 주장하고 있다.

분단된 조국에서 ‘민족’의 회복은 어쩌면 사회구성원들이 추진해 야 할 필수적인 과제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양국 정상들 혹은 정치 지도자들이 ‘민족’을 강조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고 할 수 있다. 대 한민국 헌법 69조에 따르면,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나는 헌법 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 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라는 선서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정치의 영역에서 ‘민족’개념이 급격하 게 강조되거나 퇴보하지는 않았고 비교적 원만한 상태에서 제도화 되었다.

민족통일론의 침체

4)

이산가족 상봉은 분단의 비극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당사자 뿐만 아니라 현장의 기자 및 통일부 직원 그리고 일반 시청자 모두 상봉 장면을 보고 눈물을 감추지 못한다. 그리고 사회구성원들은 이 의례를 통해 ‘민족의 회복’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를 가슴으로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적 애잔함과는 별개로 사회는 ‘민 족’을 예전처럼 숭고한 가치라고 여기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 개념 은 예전처럼 자동적으로 사회적 연대를 창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 이다.

이처럼 변화된 사회적 분위기는 객관적인 조사를 통해서도 발견 된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통일의 필 요성을 인정하는 입장이 2017년 53.8%에 불과하다. 조사를 시작한 2007년도 63.8%에 비하면 10년 사이 약 10%가량 낮아졌다(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2017: 34). 특히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 가운데 ‘같 은 민족이니까’라는 응답은 조사가 시작할 당시 50.7%였지만 이 역 시도 지난 10년 동안 약 10% 가량 하락하였다. 2018년 7월 31일 문 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남북 관계에 대한 인식 조사”에 따르면, “귀하는 북한 주민을 한민족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전체 국민들 가운데 약 83.6%가 이에 동의했다고 보도하였다. 하지만 통 계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만 19세에서 29세의 경우 28.2%, 만30-39세의 20.4%가 북한주민을 한민족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는다 고 응답하였다. 젊은 세대의 부정적인 응답률은 40대의 15.0%, 50대 의 10.5%, 60대 이상의 11.6%를 훨씬 상회하고 있다(문화체육관광부, 2018: 24).

통일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은 과거에도 존재하고 있었지만 이는 통일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사회적 혼란에 대한 우려가 대 부분이었다. 현재와 같이 ‘민족’회복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거나 의심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민족주의와 다소 상반되는 ‘다문화주의’의 확산으로 인해 민족담론이 약화되었다고 할 수도 없 다. 대한민국에 다문화주의가 건강하게 자리잡아 민족주의를 약화시 키고 있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없다. 구체적인 연구가 아직 나오지는 않았지만, 다문화주의에 반대하는 사회구성원들이 민족의 회복을 지 지하는 것은 아니며, 어쩌면 양자 모두를 반대하는 경향도 높을 수 있을 것이라고 사료된다. 이뿐만 아니라 통일론에서 종종 등장하는 ‘공동체’라는 개념 역시 일종의 노스텔지어 혹은 회복해야 할 이상 향으로만 남아있을 뿐, 현재 대한민국의 사회구성원들을 움직이는 실질적인 가치와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어떠한 사회적 요인이 민 족과 통일에 대한 시각의 변화를 초래하였는지는 구체적으로 후술 하도록 하겠다. <그림 1>.

<그림 1>

통일의 당위성을 ‘민족’이라 응답한 비율

출처: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통일의식조사 2017』를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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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주의 통일론

2.

자유민주주의 통일론의 기반

1)

‘민족’통일론이 약화된 원인이 반공주의 혹은 보수주의와 깊은 연 관이 있다고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의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장성택 처형, 김정남 암살 등과 같은 일련의 사건들은 대한민 국 사회구성원들에게 큰 분노와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이러한 상황 과 더불어 민족중심의 통일론과 이를 실천했던 ‘햇볕정책’을 비판하 며 ‘자유민주주의 통일’담론이 등장하였다. 이 개념은 학술적으로 상 세하게 논의된 바도 없고, 구체적인 정책으로 실행된 적도 없는 모 호한 통일론이다. 다만 영향력 있는 우파논객인 조갑제 전 월간조선 사장을 비롯한 우파인사들에 의해 통용되는 통일론이며 반세기를 풍미했던 반공주의에 기반한 통일론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 의 통일론은 헌법 4조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 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에 기반하고 있다. 다만 ‘자유민주주의 통일론’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시장경제를 북한에 확산시키기 위해 정부와 국제사회(특히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가 총력을 다해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 론 이 통일론에서도 민족이라는 가치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다. 강력한 독재체제에 신음하는 북한주민들과 그들의 인권을 회복하는 것이 진정한 민족의 회복이라고 간주하고 있으며, 여러 이유로 북한 의 지도부와 손을 잡는 것은 반인륜적임과 동시에 반민족적이라고 주장한다.

이 통일론은 ‘반공주의’ 위에 수립되어 있다. 진보진영의 원로학자 인 최장집 교수는 “냉전은 한국사회에서 정치의 틀을 조직하고 그 틀 내에서 허용되는 정치적 실천과 이념의 범위를 매우 좁게 제약 하는 가장 큰 힘이었다”고 언급하면서 냉전 반공주의야 말로 한국 사회의 ‘보수성’을 형성한 이데올로기라고 주장하였다(최장집, 2006: 77). 하지만 반공주의는 단순하게 권위주의 국가가 창출해낸 허위 이데올로기라고만 볼 수는 없으며 한국인의 집단적 트라우마에 의 해 자발적으로 형성된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한국전쟁이후 북한의 위협은 실재하였으며 이에 물리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사회에서 지 지를 받았다. 예컨대, 분단의 한을 노래한 가수 현인의 대중가요 ‘굳 세어라 금순아’의 가사는 북진통일의 희망을 담고 있었다.5)

자유민주주의 통일론의 한계

2)

사실 개인의 자유와 통치체제로서의 민주주주의 결합물인 ‘자유 민주주의’는 선진 사회가 추구해야할 가치 있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의미 있는 통일론으로 간주되지 못하고 있으며 광범위한 사회적 지지를 얻지도 못하고 있 는 실정이다. 그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자유민주주의 통일론’을 주장하는 집단의 호전성 때문이다. 어버이 연합 및 태극기 부대들은 이 담론을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종북좌파 척결’, ‘김정은 참수’와 같은 자극적인 용어를 사용한다. 이는 대결을 통해 평화와 통일을 이루겠다는 입장인데, 이 대결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둘째, 이분법적인 ‘반공주의’의 논리를 외교적 혹은 국가 전략수립 의 범주를 넘어 온 사회에 적용하고자 하는 것이 문제이다. 개인의 자유와 법치를 위협하고, 역사적으로 계승할 만한 가치가 있는 모범 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것이 현재 대한민 국 구성원의 일반적인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보수적인 박 근혜 정부가 통합진보당을 내란 음모 혐의로 위헌정당해산 심판을 청구하였고, 헌법재판소가 2014년 12월 19일 해산판결을 내렸을 때, 사회구성원들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지지하였다. 중앙일보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약 63.8%(매우 찬성 45.4%, 대체로 찬성 18.4%) 가 통합진보당의 해산에 찬성하였으며 24%가 반대하였다. 또한 당시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현재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의 절반 이상이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지지하였다(중앙일보, 2014). 이처럼 ‘반공주의’ 의 가치를 사회구성원들의 상당수가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반공 주의’가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억압하는 방향으로 변질될 경우, 이 통일론은 그 의도를 의심 받을 수밖에 없다.

셋째, 자유민주주의가 주장하는 구체적인 내용이 빈약하다. 근대 민주주의의 사상적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 혁명은 자유, 평 등, 박애의 정신을 강조하였다. 이 가운데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 는 경우에 따라 충돌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어떠한 방식으로 조화 롭게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은 모든 민주주의 국가가 지니고 있는 근본적인 숙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 통일론이 진지 한 통일론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통일과정과 통일이후 자유와 평 등의 관계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또한 남북한 문제를 공통으로 해결할 수 있는 비전이 필요하다. 이를 위 해서는 일단 한국사회가 당면한 노동권, 소수자 문제, 비정규직과 같은 문제를 ‘자유 민주주의’ 방식으로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 한 대답이 요구된다. 이렇게 얻은 경험과 성과를 통일 한반도로 확 장시키는 것이 올바른 전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 깝게도 이러한 내용은 잘 보이지 않는다. 현실은 공허하고 원초적인 시장경제의 근본적 우월성과 향수에 젖은 개발주의 담론만 반복되 고 있을 뿐이다.

남북한의 사회적 변화

III.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민족주의에 기반한 통일론과 민족을 완 전하게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보다는 반공주의와 민주주의 및 시장 경제를 강조하는 ‘자유민주주의’ 통일론은 양자 모두 그 기반이 약 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물론 그 통일론 자체의 결함으로 지적 될 수도 있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시대의 변화 및 새로운 세대 의 등장과 맞물리는 문제이다. 본 장에서는 새로운 세대의 특징과 가치관이 무엇이며 한국사회에 어떠한 변화가 발생하였는지 살펴보 도록 하겠다.

새로운 세대의 등장

1.

새로운 시대와 사회는 새로운 세대를 창조해낸다. 세대를 본격적 인 사회학의 연구대상으로 삼은 사회학자 칼 만하임(Karl Mannheim) 은 사회 정학(靜學), 사회 동학(動學) 그리고 역사사회학적 관점을 통합하여 분석할 것을 권장하였다. 또한 연령이라는 범주를 단순하 게 생애주기로 이해하기 보다는 각 세대의 사회적 경험에 주목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 이유는 젊은 시절에 확립된 세계관의 영향력이 일평생 강력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시절 형성된 세계관은 그 후의 사회적 경험을 해석하는 매우 중요한 준거틀이 된다 (Mannheim, 1952: 298). 예를 들어 광주민주화운동, 세월호 참사와 같 은 국가적 재앙을 맞이한 세대는 빈부 격차나 사회적 지위와 상관 없이 이에 대한 문제의식과 비판의식을 장기적으로 지속하고 공유 하게 된다.6)

현재의 청년세대를 20대에 막 진입하는 1999년생부터 40세 이전 의 1979년생까지로 정의하는 경우, 각 세대의 구성원들은 상이한 사 회· 경제적 여건에서 성장하였으며, 상이한 시기에 청소년기와 성년 기를 거쳤다. 현재의 청년세대들의 정서적, 감정적 유산은 86세대를 넘어 90년대 ‘신세대’로부터 비롯되었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출현은 새로운 담론과 탈이데올로기적인 신인류가 무대 전면에 등 장할 것이라는 일종의 예광탄이었다. 박재흥은 90년대 초반에 등장 한 ‘신세대’가 다른 세대와는 질적인 차이를 보여준다고 주장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문화적 행태적 특성을 반영한 최초의 영향력 있는 세 대명은 1993년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신세대’이다. 여기서 말하는 ‘신세대’는 구시대와 대비되는 의미의 보통명사가 아니라 1993년 무렵 20세 전후의 젊은이들을 가리키는 고유명사 급 ‘신세대’이다. 이 시기는 한국사회가 대중소비사회의 징후를 보이고 문민화를 통해 정치적 안정 국면에 접어들었으며 밖으로는 지구화와 탈냉전 흐름이 전개되던 시기 였다. 큰 경제적 어려움 없이 자란 젊은이들은 정치적 쟁점이 실종된 상황에서 관심과 욕구가 다원화되었으며, 소비지향, 개인지향, 탈권위지 향적 특성을 보였다. 많은 평론가와 학자들이 ‘신세대’ 현상에 주목하고 담론에 참여한 까닭은, 그들이 386세대를 포함한 그 이전 세대들과 큰 차이를 보였고 앞 세대와의 연속성보다는 깊은 단절을 보였기 때문이 다.”

(박재흥, 2009: 18)

사실 현재의 청년세대 혹은 88만원 세대들은 과거의 ‘신세대’들과 비록 연령에 따른 경험 차이는 있을지언정 큰 틀에서 이들의 가치 관과 삶의 태도를 그대로 이어 받았다.7) 86세대는 젊은 시절 기성 세대에 대항하여 그들만의 정치적 비전, 문화와 담론을 구성하였음 에도 불구하고, 삶의 태도에서는 여전히 기성세대와 유사한 원리를 따르고 있었다. 그들은 근검절약을 미덕으로 여겼고, 민족주의적이 었으며, 여전히 가부장적 문화의 잔재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신 세대’들의 삶의 양식은 이들의 부모 세대나 선배 세대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개인주의와 반국가주의의 확산

2.

새로운 청년세대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청년세대의 가치관 을 수용한 것은 아니었다. 청년세대의 생활방식과 습속은 기성세대 의 문화 및 사회구조와 종종 충돌하여 파열음을 내고 있다. 특히 청 년세대들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개인주의는 아직 한국 사회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문유석 판사는 자신의 저서 『개인주의자 선언』에서 개인을 존중하지 않는 문화가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는 개인을 존중하 지 않는 집단주의를 풍자와 해학을 곁들여서 비판한다.

“나는 감히 우리 스스로를 더 불행하게 만드는 굴레가 전근대적인 집단주의 문화이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근대적 의미의 합리적 개인 주의라고 생각한다. … 도대체 우리 사회가 신자유주의 이전에 구자유 주의라도 제대로 해본 적이 있는 사회일까? 자본주의 후의 대안을 모 색하기 전에 제대로 된 자본주의라도 해본 적이 있나? 근대적 의미의 개인을 존중해 본 경험 없이 탈근대 운운하는 것은 시대착오 아닐까?”

(문유석, 2015: 23-4)

위와 같은 도발적인 언사가 대한민국 사회에서 가장 보수적인 집 단인 법관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는 그의 개인적인 성향 뿐만 아니라 그의 연령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인 다. 문유석 판사는 69년생으로 86세대의 막내이지만 신세대로 분류 가 가능하다는 점도 분명 영향이 있을 것이다.8) 이 책은 국립중앙 도서관이 뽑은 ‘직장 상사에게 보여주고 싶은 책’ 1위에 선정되었는 데, 아마 많은 청년독자들이 개인을 하대하는 한국의 맹목적 집단주 의에 질렸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개인주의는 개인이기주의와는 구별된다. 개인주의는 ‘개인’을 중요 하게 여긴다. 따라서 타인 역시 귀중한 ‘개인’이기 때문에 타인의 자 유를 침범하는 것은 ‘개인주의’에 반하는 것이다. 반면 개인이기주의 는 자신의 이해관계와 입장을 극대화하여 타인과 사회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교과서적인 진술을 서술하는 까닭은 ‘개인주의’의 기본적인 원칙이 사회에서 잘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뉴스에 등장하는 각종 엽기적인 ‘갑질’ 혹은 ‘을질’ 등은 타인이 개인으로서 온전한 존재라는 점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불행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개인주의적 성향의 발전은 기존의 개인 없는 ‘국가’나 ‘민 족’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국뽕’이라는 단어가 그 대표적인 예라 고 할 수 있다. ‘국가’와 ‘필로폰’의 합성어인 이 용어는 인터넷에서 자생적으로 발전하였다. 나무위키는 국뽕을 “지나친 애국심 고양과 국가주의 조장에 대한 반감에서 만들어진 신조어 … 비정상적이고 비합리적인 수준으로 자국을 옹호하며, 그것을 당연시하는 태도”라 고 정의하고 있다(나무위키, 2018). 예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의미 를 지닌 용어가 인터넷에서는 상당히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고 일부 언론에서도 종종 사용되고 있다. 국산품 애용과 같은 맹목적인 애국 심 마케팅 그리고 개인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집단만 강조하는 문화는 더 이상 사회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개인주의적인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은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과 가치관뿐만 아니다. 심지어는 가족의 형태마저 개인주의적으 로 변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산업화를 경험하면서 가족구조 변동이 전통적 확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변화되었고, 최근에는 핵가족구조 가 약화되는 가운데 1인 가구가 급증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상 황에서 우리는 전통적 가족의 메타포를 사용한 통일정책을 경험하 고 있다. 이것은 개인에게 엄청난 심리적 부담감을 안겨주거나 통일 의 당위성을 추상적 차원 이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 왜냐하 면 현 시점에서 민족이 강조되는 것은 일종의 집단주의를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또한 청년세대들은 기성세대들이 경험하였던 ‘공동 체적인 삶’을 경험했다고 볼 수도 없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반공주의’가 강화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 라고 할 수 있다. 과거의 반공주의가 한국전쟁의 직접적인 트라우마 에 의해, 그리고 민주적 정당성이 결여된 독재정권이 만들었던 허위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탱되었다면 최근의 반공주의는 보다 더 자율 적인 면모를 보인다. 즉 개인들이 느끼기에 공산주의적 사악함이란 ‘개인’과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의 이원재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1970년대 이후 출생한 포스트 86세대 들과 2030세대들에게서는 ‘반북진보’의 성격이 나타났다(중앙일보, 2017). 국내의 사회적 현안에 대해서는 분배를 강조하고 있지만, 북 한에 대해서는 86세대들보다 훨씬 더 보수적 입장을 취한다는 것이 다. 이는 분배정책을 통한 사회주의 건설이 아니라, 건전한 개인주 의 확립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반면 현재의 북 한체제는 이 세대들이 추구하는 가치들과 상반된다. 이처럼 최근의 청년세대들은 개인을 존중하지 않는 정치체제, 문화에 대해 매우 비 판적이다. 안타깝게도 민주화를 이룩한 시점부터 지금까지 한국 정 치는 이러한 요구를 귀담아 듣지 않고 있으며 특히 통일론의 경우 는 지금까지도 전통적인 메타포를 반복하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사회의 변화

3.

한국의 사회적 변동에 따라 기존 통일담론의 적실성이 약화되었 다는 점은 앞에서 지적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남한뿐만 아니라 북한 사회 역시도 상당한 수준으로 변화해왔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과거 김일성 집권당시 북한에서는 지도자에 대한 통상적인 우상화 를 뛰어넘는 강력한 신격화가 실시된 바 있다(노현종, 2016). 또한 1960년대 북한은 ‘사회주의 대가정’론을 제시하면서 수령, 당, 인민 의 관계를 아버지 어머니, 자녀의 관계와 동일하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주민들은 수령을 어버이처럼 섬기고 모실 것을 강요받았다(통일부 통일교육원, 2018: 14-6). 그리고 이러한 전근대적인 가족의 메 타포는 아직까지도 북한의 선전물에 종종 등장한다. 또한 북한 정권 이 공들여서 기획하는 대형 마스게임이나 의례를 살펴보면 그들이 독재 체제, 민족주의, 집단주의를 표방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현재 북한 에서도 ‘민족’, ‘국가’와 같은 거대 담론이나 ‘집단주의’의 성격이 강 화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북한에서도 개인주의적 삶의 양식이 확산되어 가고 있다.

먼저 민족에 대해서 살펴보면, 본래 마르크스는 민족주의에 대해 서 적대적이었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민족주의라는 허위의식은 생 산관계와 계급관계의 모순을 희석시킬 수 있는 위험성이 있었다. 하지만 레닌과 스탈린은 자본주의적 제국주의의 착취 하에서 피식 민지민들의 민족주의는 진보적인 기능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전략에 따라 소비에트는 민족주의 의식을 고양시켜 많은 식 민지 사회주의자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Martin, 2001). 또한 우 드로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라는 공허한 슬로건을 대체할 수 있었다.

북한의 경우, 1955년부터 ‘주체’노선을 강조하면서 민족주의를 강 하게 제시하기 시작하였다. 스탈린 사후 소련에서는 기존의 전체주 의를 부분적으로 수정하기 시작하였고 개인숭배 문화를 개선하고자 시도하였다. 이러한 시류에 따라 헝가리,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의 독재자들은 퇴위하게 되었다. 하지만 북한은 이러한 세계적 추세를 거부하였고 소련파의 영향력을 제거하여 독재정치를 강화하는 방향 을 택했다.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강력한 민족주의 노선을 발전시키 기 시작하였다(Lankov, 2005). 또한 1980년대 중·후반부터 동유럽권에 서 체제가 이완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을 목격하면서 민족주의를 더 욱 강화하였다. 구체적으로 1986년 “조선민족제일주의”라는 구호를 등장시켜 사회주의 이념보다는 민족을 앞세웠다. 이를 통해 ‘민족’은 사회적 응집력을 형성시킬 수 있었으며 이 유산은 아직까지도 북한 에 강하게 남아 있다.

이와 같은 민족담론의 강조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집단주의적인 성격은 옅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본고에서 장기간의 북한 사회의 변 동을 다 상세하게 이야기할 수 없지만 고난의 행군시기 계획경제의 붕괴 및 시장화는 기존의 사회담론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북한지도 부는 ‘주체’라는 용어를 ‘선군’으로 대체하는 작업을 실시하였다. 그 까닭은 사회구성원들이 ‘주체사상’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하였 으며, 이 사상이 일종의 저항 이데올로기로 변화될 수 있는 위험성 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구성원들이 내 인생의 주체는 바로 나 자신이라고 여기기 시작하였다. 서재진은 “주체사상은 의식성, 창발성, 자주성을 강조하는 사상인데, 이러한 사상은 시장에서 생필 품을 획득하고 정부에서는 개인의 자력갱생을 강조하고 있는 상황 에서 개인적으로 해석되고 있다는 것이다. 의식성, 창발성, 자주성을 발휘해서 각자 생존하는 방식을 터득하고 있다는 의미이다”라고 지 적하였다(서재진, 2006: 356).

이렇게 발아한 개인주의는 제한적이지만 실질적인 제도의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다. 한 탈북자의 증언에 의하면, 과거에는 인민반 반 장이 아무런 허가 없이 기습적으로 문을 열고 각 세대를 점검하였 다고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주민들의 반발이 계속되자 근래에는 우리나라의 경찰격인 보안원의 동행시에만 가택조사가 가능하도록 변경되었다고 한다. 북한의 도시지역의 경우 의복이나 여성들의 화 장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밀반입된 한류의 영향을 받아 의복과 화장 방식 역시 전반적으로 자신의 개성을 표출하는 방식으로 변화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변화들이 북한의 정책에 그대로 반영되는 것은 아니다. 북한은 아직도 ‘사회주의 대가정’이라는 메타포를 사용 하고 있으며, 아직까지는 이를 변화시킬 의지를 보이고 있지 않다. 그러나 비록 더디기는 하지만 북한사회는 개인주의가 확산되는 방 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한번 확립된 개인주의는 다시 개인이 부재한 집단주의로 돌아가기가 매우 어렵다. 통일이 언제 이루어질지는 알 수 없으나, 현재의 추상적 거대담론과 개인 없는 민족주의로는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얻거나 남북한 사이의 강력한 사회적 연대성을 확 립하기 어려울 것이다.

순수 이데올로기로서의 ‘시민통일론’과 정책수립의 기여 가능성

IV.

앞 장에서 사회적 변화가 기존의 통일론과 암묵적으로 마찰을 빚 고 있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남북한 사이의 통합과 화해를 이룩할 수 있고 동시에 실질적인 대북정책 수립에 도움을 줄 수 있 는 통일론은 무엇인가? 사실 통일론이 순수하게 이론적인 것에서 그친다면 그 효용성이 감퇴할 수밖에 없다. 반면 구체적이고 전문적 인 정책만 가지고는 국론을 모을 수 없다. 그러므로 본 연구는 시민 적 가치에 기반을 둔 ‘시민통일론’을 이론적인 통일론과 구체적인 정책론의 대안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새롭고 능동적 주체인 시민의 개념

1.

아마도 많은 사람들에게 정치적 주체로서의 ‘시민’은 친숙한 개념 이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정치적 주체로 ‘국민’이 라는 개념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의 여러 사회과학 자들의 연구와 논의들은 ‘국민’이 아닌 ‘시민’의 개념을 강조하고 있 다. 본 절에서는 이러한 개념적 변화가 어떤 맥락에서 발생하였는지 를 간략하게 살펴보고, ‘시민’ 개념의 유용성을 어떻게 통일론에 접 목 시킬 수 있는지를 모색해 보도록 하겠다.

최근 ‘시민’과 관련된 여러 논의들은 ‘국민’의 개념에 문제를 제기 하면서 본격화되었다. 기존의 ‘국민’이라는 개념은 주권의 소재가 사 회구성원들이 아니라 국가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 최근 학계 의 중론(衆論)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국가는 ‘국민’이라는 개념을 통 해 사회구성원들을 통제하고 동원만 하였지,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 지는 않았다. 일제 강점기의 ‘국민정신총동원운동’, 박정희 시대의 ‘국민교육헌장’, 그리고 1972년도에 제정된 ‘국기에 대한 맹세’ 등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국민과 국가의 관계는 위계적이고 수직적이었 다.9) 또 하나의 예를 들자면 1950-60년대 교실의 급훈을 살펴보면 ‘필승’, ‘단결’, ‘力’, ‘적중’ 등과 같은 군사적인 용어가 사용되기도 하 였다. 당시 교육자들이 자유롭고 자발적이고 개성적인 인격체를 육 성하기 보다는 국가와 집단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인력을 생산하 고자 하였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개인 없는 집단주의와 추상적 민족주의 역시 기존의 ‘국민’의 틀 안 에서 형성된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계에서는 ‘시민’이라는 새 롭고 능동적인 정치적 주체를 강조하기 시작하였다.

‘시민’이란 개념은 본래 서구에서 파생되었다. 이들 국가권에서 사 회의 발전을 이룩한 핵심적인 집단은 국가와 귀족이 아닌 상인, 전 문가, 학자 등이었다. 경제와 사회는 국가가 아닌 개인들 즉 사적인 영역이 확장되면서 발전되었다. 독일에서 시민사회의 형성을 연구한 역사사회학자 존 킨(John Keane)은 시민층의 발전이 도시의 발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는 “폭정에 저항할 수 있는 권 리, 왕정의 폐지, 헌법에 대한 습관과 관습, 성문법, 보편선거, 공직 재임기간의 제한들과 같은 권리들은 모두 도시생활에 그 뿌리를 두 고 있다(Keane, 2006: 4)”고 주장하면서 새로운 근대적 사회 질서는 도시생활을 매개로 이루어졌으며, 기존의 억압적인 국가와 갈등하면 서 성장하였다고 했다. 국가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법을 위반한다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 스스로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기제를 형성시 키며, 이를 유지시킬 수 있는 윤리적 규범을 자발적으로 형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학자인 송호근도 이와 유사한 입장에서 시민을 정의하고 있다. ‘시민’이란 자신의 고유한 자유 및 사익을 추구하면 서도 규범을 준수하고, 스스로를 절제하고, 양보를 통해 공익에 기 여하는 집단이라고 하였다. 만일 공익을 추구하지 않는 시민이 있다 면 그는 시민의 자격을 잃게 될 것이다. 프랑스의 시토엥(Citoyen), 영국의 시티즌(Citizen), 독일의 부르거 (Burger)는 유사한 맥락에서 발 전되고 형성되었다고 보았다(송호근, 2015: 371).

반면에 동양에서는 국가가 절대적인 존재였으며 일반 백성들을 주권을 지닌 존재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물론 ‘이민위천(以民爲天)’이 라는 용어가 있어 백성들을 하늘처럼 여기게 하는 것이 군주를 비 롯한 지도층의 가장 큰 책임이라고 하였지만, 이것은 주권의 향방이 백성에게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서구 제국주의와 일제 제국주의 그리고 국가주도의 발전국가를 경험한 동아시아권에 서는 사회 구성원들이 국가에 의해 동원된 경험을 많이 가지고 있 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비추어 보면 ‘시민’이라는 정치적 주체가 등장하기에는 매우 척박한 환경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시민’ 역시 몇 가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국가 의 억압에서 벗어난 자율적인 존재이며, 그 자유에 대한 대가로 사 회적 공공성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 민이라는 개념이 지나치게 계급적이고, 전문직 친화적이라는 어감을 지니고 있다. 또한 시민의 권리인 ‘시민권’이 법적·제도적으로 주어 진다고 해서 이것이 모든 구성원들을 자동적으로 자율적인 주체로 변모시키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한 인류학자 레나토 로살도는 ‘문화적 시민권(Cultural Citizenship)’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바 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제시한 문화적 시민권이라는 용어가 형 용 모순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였다. 왜냐하면 시민권 이라는 개념에 이미 평등과 동등함의 개념들이 포함되어 있지만, 사 회의 여러 가지 차별기제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사회구성원들을 억압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시민혁명이 발생한 이후에도 여성 의 참정권은 인정되지 못했으며, 미국에서도 유색인종은 상당히 오 랜 시간 참정권을 얻지 못하였고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Rosaldo, 1994: 402-3). 따라서 ‘시민’을 구성하는 작 업은 개인의 자유와 존엄성을 사회적으로 승인함과 동시에 지속적 인 통찰과 사회운동을 통해서 비시민의 범주를 줄여나가는 것이라 고 할 수 있다.

시민 통일론: 공존을 넘어 공변으로

2.

앞서 언급한 정치적 주체로서의 ‘시민’의 개념을 통일론에 접목시 켜보도록 하겠다.10) 구체적으로 시민통일론이 지향하는 바는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시민통일론은 ‘시민적’ 가치를 온 ‘민족’에게 확산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시민통일론은 전략적이 고 도구적인 개념이 아니다. 통일 과정과 통일 이후 시대에서 우리 가 추구해야할 본질적인 가치를 함축하고 있는 용어이다. 한반도에 서 통일이라는 남북한 용어에 ‘민족’이 이미 포함되었음을 상기한다 면, 시민통일론이 민족통일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시민통일론은 기존의 민족통일론에 부재하였던 여러 가지 가치를 추가하여 보다 많은 사회 구성원들이 공감할 수 있는 통일론을 구축하는 것을 목 표로 한다. 과거 민족의 통일을 주창하였던 많은 지도자, 사상가, 운 동가들이 시민적 가치를 부정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냉엄한 분단 구조 및 비민주적인 통치체제 하에서는 시민적 가치를 먼저 한국사 회에 구현 시킬 수도 없었고, 이를 한반도 전역으로 확장시킨다는 것은 그저 상상에 불과하였다. 그리고 변화된 시대에는 민족이라는 개념 외에도 다른 가치들이 필요하다. 이러한 점을 인식한 박명규는 “21세기 한국에서의 민족주의는 민족적 감정과 정서, 민족 제일의 가치를 절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중요한 가치들에 의해 ‘통제된’ 민족주의여야 할 것이다. 민족주의 그 자체가 목적가치가 아니라 보다 중요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적이고 도구적인 것 임을 의미한다. 민족주의는 매우 강렬한 정서적 힘과 대중적 동원력 을 수반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늘 불안정하다(박명규, 2006: 428-29).” 고 지적하면서 기존의 민족주의가 새롭게 변화해야한다는 점을 강 조하였다. 아마도 현 시점에서 민족주의 통일론은 시민적 가치를 담 아야만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북한 의 무력에 의한 ‘적화통일’도 분명 ‘민족통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하 지만 이 경우 우리의 ‘시민적 가치’는 손상될 수밖에 없는데, 이는 남북한 주민들 모두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둘째, 통일과정에서 그리고 통일 이후 차별받지 않는 능동적인 개인을 형성하는 것이다. 시민적 통일론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모습 은 일반적인 시민운동의 목표와 동일하다. 이병천 교수가 “민주적 시티즌십에 기반을 두고, 계급, 민족, 젠더, 인종, 지역 세대 등 모든 다양한 주체의 위치에서 어떠한 억압도 차별도 받지 않고 인간이라 면 마땅히 누려야 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추구하며, 이와 동시에 정치공동체에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참여, 이를 통한 시민적 자유 와 연대의 삶의 실현을 지향하며 개인의 인권 또한 이를 통해 온전 히 보장될 수 있다(이병천, 2004: 34).”라고 언급한 사안과 근본적으 로 동일하다. 향후 통일이 가시화되는 시점에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진행중인 다문화, 다인종 현상이 더욱 진행될 것으로 보이며 북한 주민들도 동등한 시민이 아니라 타자로 여겨질 가능성이 크다. ‘시 민적 가치’를 확립함으로써 유사하면서도 다른 이 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시민통일론은 평화적 공존을 넘어서 평화적 공변(共變)을 추구한다. 평화 공존을 단순하게 정의하자면 ‘가시적인 갈등이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수동적인 시도만으로는 진 정한 통일을 달성할 수 없다. 평화 공변, 즉 ‘갈등을 유발하는 원인 을 제거하고 공통의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 보다 진 정한 의미의 통일에 가깝다고 하겠다. 현실적으로 이는 북한이 큰 틀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 이며 북한 주민들은 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 한다. 다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투명하고 정직하며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남한 사회 역시 상당한 수준으로 변화해야 만 한다.

넷째, 시민통일론은 개인과 인간을 존중하지 않는 개발주의를 지 양한다. 진보진영의 원로인 한완상 전 통일원 부총리는 최근 언론과 의 인터뷰에서 “남과 북이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협력하면 세계 5 대 강국으로 일어설 수 있다(서울신문, 2018)”고 언급하였다. 최근의 남북한 간의 화해 협력 분위기 가운데 희망찬 통일조국의 미래를 위한 덕담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한의 경제적 협력을 강조하는 측 은 주로 진보진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놀랍게도 그 방식과 추진내 용이 과거 발전국가를 상기시킨다. 아직까지 남북경협이 초기단계이 고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장밋빛 청사진을 그리 는 것이 크게 잘못된 일은 아니다. 다만 본말이 전도될 수 있는 가 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남한이 경제발전을 내세워서 북한 주민 들을 마음대로 동원하거나 수탈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는 존재처 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 독일의 통일과정에서 나타난 ‘내부 식민지’ 화의 문제도 결코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11) 지난 시절 우리가 성장에 매몰되어 개인의 욕망을 극대화시키면서 사회와 타인을 돌 보지 못했던 점을 철저하게 반성하고 이러한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 야 한다. 더구나 통일이 가시화되는 시점에는 분명 정보화와 탈산업 화 산업이 주력이 될 가능성이 높다. ‘남측의 우수한 기술력과 북측 의 풍부한 노동력’이라는 구시대의 개인 없는 발전담론보다는 자발 성, 창의력과 친화적인 시민적 가치에 따라 미래 통일산업을 디자인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사안이며 또한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위에서 언급된 가치들은 통일과정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발전 과 성숙을 위해서 사회가 요구하는 사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요약 하자면 시민통일론은 흡사 보수진영에서 주장하는 ‘자유민주주의 통 일론’과 유사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양자 간의 결정적인 차이점 은 ‘자유민주주의 통일론’이 ‘국민’이라는 개념에 입각하여 사회를 동원의 대상으로 간주한다면, 시민통일론은 ‘국가’나 ‘민족’보다는 개 인을 그 주체로 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또한 개인의 강조는 민 족통일론에서도 소홀하게 다루어져 왔던 사항이다. ‘시민통일론’은 이를 극복하여 남북한 모두에서 자발적이고 유능한 ‘개인’이 탄생되 도록 노력한다.

순수 이데올로기로서의 ‘시민통일론’과 실천 이데올로기로서의 ‘대북·대외정책’

3.

통일정책은 대내, 대북, 대외차원으로 구체화 할 수 있다.12) 앞서 언급한 ‘시민통일론’은 규범적인 통일정책이며 대내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13) 하지만 이와 같은 일반론만 가지고는 상대가 있으며, 여 러 국내외 요인에 따라 요동칠 수밖에 없는 대북정책 및 대외정책 을 수립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즉 국론을 통합시키는 훌륭한 대내 정책을 펼친다고 하여 그것이 자동적으로 성공적인 통일정책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통일론의 간극을 극복하기 위해 중국연구자인 프란츠 샤 먼의 ‘순수 이데올로기’와 ‘실천 이데올로기’의 개념을 활용할 수 있 다. 순수이데올로기는 조직과 개인에게 의식적인 세계관을 형성하는 기능을 하는 이데올로기라고 정의할 수 있으며, 실천 이데올로기는 도구적인 성격을 가지면서 행동의 합리적인 실현을 위해 고안된 이 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샤먼은 이종(異種)의 이데올로기들 의 관계가 상호 배타적이지 않고 오히려 상호 보완적인 관계라는 점을 예리하게 지적하였다. 그는 “순수 이데올로기와 실천 이데올로 기는 비록 상이하지만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순수 이데올로 기가 없다면, 실천 이데올로기는 정당화 될 수 없다. 반면에 실천 이데올로기가 없다면 순수 이데올로기는 실질적인 행동으로 변화할 수 없다.”고 하였다(Schurman, 1966: 23). ‘시민통일론’은 위에서 언급 된 순수 이데올로기에 가깝다. 이것만 가지고 통일과 관련한 복잡한 정치적 함수를 풀 수는 없지만, 정책 수립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첫째 시민통일론은 대북 정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시 민적 가치가 기준이 되는 시민통일론에서는 일방적인 퍼주기를 지 양하여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교류협력정책을 유도할 수 있다. 민족 의 영향력이 감소된 현 시대에서는 대북정책이 북한의 경제발전 보 다는 시민성의 발전에 일정 수준 기여해야지만 그 성과를 인정받을 수 있다. 북한은 “무엇이 북남관계의 새로운 여정을 가로막고 있는 가”라는 로동신문 7월 31일자 사설을 통해서 민족의 회복을 강조하 며 경제 제재에 아랑곳 하지 말고 우리민족끼리 교류협력을 확대 및 재추진할 것을 요구하였다(로동신문, 2018). 하지만 대한민국 정 부가 대북정책 수립시 ‘민족회복’ 외의 핵심가치를 제시하지 못 하 고 북측의 입장을 수용만 한다면 사회로부터 지지를 받기 어려울 것이다. 북측 역시 시민적 규범을 존중한다는 최소한의 의지를 보여 주어야지만 경제교류가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햇볕 정책으로 대표되는 포용정책은 그 성과에도 불구하고 많은 논란을 야기하였 다. 그 까닭은 이 정책이 화해와 협력이라는 가치는 성공적으로 제 시하였으나 통일이 지향하는 근본적인 가치를 제시하지 못했기 때 문이었다. 즉 ‘순수 이데올로기’로서의 ‘시민성’이나 이에 상응할 만 한 가치가 부재하였던 것이다.14) <그림 2>.

<그림 2>

시민통일론과 통일정책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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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 정책은 시민적 가치를 달성하기 위한 일종의 도구적인 수단 이며 과정일 뿐이지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절대적인 가치 가 아니다. 북한을 의도적으로 자극할 필요는 없지만 대북정책과 통 일정책의 궁극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사회구성원들에게 제시하는 것 은 정부와 정당의 의무라고 할 수 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을 비롯한 남북경제협력의 목표가 ‘시민적 가치’의 창출이라면 이는 미 래를 위한 투자가 되지만, 이 가치를 망각할 경우 이 정책은 ‘퍼주 기’로 전락할 수 있다. 과거 이러한 점을 소홀하게 간주하였거나 기 피하였기 때문에 그 성과가 퇴색되고 말았다. 현 정부는 집권 초기 에 적극적인 대북정책을 펼쳐 현재까지 큰 성과를 가져왔다고 평가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현시점에서는 시민적 가치의 강조 없이도 사 회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향후 빅 이벤트가 종료되고 남북 미중 사이의 지루한 줄다리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점에서 정 책이 지향하는 가치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한다면 지지자들이 이 탈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에 시민적 가치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이에 따라 교류협력정책을 실시한다면 한다면 국론분열을 방지할 수 있 으며, 성향이 다른 후임정부가 들어와도 이를 수용하기가 용이해져 정책의 지속성을 보장할 수 있다.15)

시민통일론은 가장 논란이 되는 북한 인권을 둘러싼 긴장 해결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할 수도 있다. 시민을 형성한다는 것은 국가가 개인에게 행하는 부당한 억압을 지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시민권(citizenship)에는 이미 인권이라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한국 의 정치지형에서 북한 인권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집단은 남북관 계의 개선을 매우 극렬하게 반대한다. 하지만 이러한 ‘원칙론’만으로 는 전략을 수립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헌법적 가치만을 비현실적으 로 고수하여 접촉 자체를 거부할 경우 북측을 변화시키기가 매우 어렵다. 정책수립과 집행과정에서 헌법의 정신이 발현되어야지, 헌 법을 방패삼아 압박정책만 지속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현실적으 로 북한의 인권상황을 일회에 극적으로 개선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시민을 구성한다는 목표를 염두에 두고 이를 북측에 지 속적으로 요구 할 경우 일정 수준의 성과를 끌어낼 수 있다. 예컨대 북한은 최근 장애인들의 개선된 복지 상황을 여러 온라인 매체를 통해서 적극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태영호 공사의 증언에서도 언급 된 것처럼 북측은 장애인 합창단과 체육단을 조직하여 여러 국제행 사에 참여하기도 하였다(태영호, 2018: 288-93). 이와 같은 정책은 국 제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북한인권을 거론한 것에 대한 대응으로 나 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북한지도부의 입장에서는 북한 사 회의 가장 약한 장애인들의 인권을 보장하더라도 이들이 반체제 운 동을 실행하기는 어려우며, 정책을 대내 선전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계산하여 취한 새로운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유야 어쨌든 지속적인 문제제기가 북한의 태도를 변화시킨 것이다.

비록 현재 북한에서 상당한 시장화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 고, 국가와 사상적으로 대립할 수 있는 시민사회가 형성되었다고 평 가하기는 어렵다. 현실적으로 외부에서 압력을 가해 시민층을 형성 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할 수 있으며, 시민성은 단 기간에 인위 적으로 형성될 수 있는 성격의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정부와 국제 사회가 북한의 체제 전환이 아니라 체제 내에서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도록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설정하고 구체적인 정책(회유 및 압 박)을 수립하고 집행한다면 인권부분의 발전과 사회의 개선이라는 부분에서도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16)

둘째 시민통일론은 대외정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시 민통일론은 대외적으로 실리적 외교를 펼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 여 각 정책의 전략적 유연성을 답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사실 대북정책은 남북관계와 통일환경의 변화에 따라 강온 양면 전략을 적절히 구사할 때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며, 어느 하나의 전략만을 계속해서 사용하면 그 실효성은 제한될 수 있다(변창구, 2011: 197). 만일 대내외적인 환경이 급격하게 변하여 포용정책으로 ‘시민적 가 치’를 수립하기 어렵다면 화해협력 정책을 압박 정책으로 전환시킬 필요도 있다. 가령 천안함 폭침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5·24 조치, 북 한의 거듭된 핵실험에 대한 대응으로 행한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 문재인 정부의 사드배치는 전략적 결단이라고 할 수 있다. 각 선택에 대한 평가는 상이할 수 있으나 이것이 적어도 ‘시민통일론’ 의 가치와 근본적으로 어긋난다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당시 북 측의 행위는 평화를 훼손하는 매우 도발적이고 위협적인 행위였다. 같은 논리로 남북대화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북한이 전향적인 조치 를 취한다는 신호를 보낸다면 여러 가지 과감한 조치를 취하여 평 화 수립에 이바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최근의 한미연합훈련의 연 기 및 중지는 ‘나라를 통째로 넘기는 행위’가 아니라 보다 더 안정 적인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정책이다.

만약 평화를 확립하고자 하는 대한민국 정부와 국제사회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심지어는 우리의 근본적인 시민적 권 리가 위험에 처했다는 결정적이고 명백한 징후들이 포착되었을 경 우에는 시민적 가치를 고수하기 위한 최대한의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 만약 민족에 대한 환상만을 고수하고 있다면 위기의 시점에 대응하지 못 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한 논리로 북한에서 시민적 가 치가 점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외세의 지나친 간섭이 나 적대적 환경 조성에도 반대할 수 있어야 한다. 즉 고정적이고 불변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시민적 가치’의 확장과 축소를 기준 으로 삼는다면 국가가 보다 실리적인 대외정책을 펼칠 수 있을 것 이다. 또한 주변국들을 설득 압박하는 작업도 더욱 용이하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시민적 가치에 기반한 통일론이 자리를 잘 잡으면 극단적 인 호혜적·호전적 정책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현실정치에 서 정치 엘리트들이 사회의 요구를 묵살하는 경우를 종종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좌우논쟁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시민적 가치 를 모든 정책의 기본적인 규범으로 격상시켜 이를 위반하는 것에 대한 비용을 높게 치르게 만든다면 국내정치의 변화에 따라 통일정 책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것을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

V.

본 연구에서는 민족에 기반 한 통일론이 사회로부터 큰 지지를 받지 못하며 사회적 연대성을 구성하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민족의 회복과 국가와 같은 거대담론은 그 집단주의적 속성상 개인 을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에 따라 다원화되고 개인주의화 된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논의들은 예전과 같은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다. 보수진영에서 주장하는 ‘자유민주주의 통일론’ 역시 그 용어 의 적합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개인이 없는 반공주의, ‘적’과 ‘아 군’의 논리를 안보영역을 넘어서 온 사회에 적용시키려 하는 공허한 통일론이라는 점을 지적하였다.

하지만 기존의 통일론의 문제점과 사회적 변화를 핑계 삼아 통일 정책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기존의 민족통일론과 보수적 통 일론이 담지 못했던 사항들을 포함하고 발전시켜 사회구성원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새로운 통일론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에 본 연구는 능동적인 주체인 시민과 시민적 가치를 한반도 전역 에 형성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민통일론’을 제안하였다. 국가와 국가 사이의 통일이 아니라, 시민과 시민의 통합을 목표로 양측에서 시민을 형성하는 과정이 현 시대의 가장 설득력 있는 통일론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는 갈등, 화해 통합을 위한 가장 기초적인 가이드 라인만을 제시해 줄 뿐이며, 궁극적으로 삶의 영역을 개선시키는 것 은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남한에서는 성숙한 민주주의를 형성하고, 인간의 위치를 보다 격상시키는 작업을 실시하여야 한다. 그와 동시 에 북한을 이러한 목표와 가치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유도해야 한다.

또한 시민적 가치의 확산은 실질적인 대북정책에 정당성을 부여 하는 지표가 될 수 있다. 정책 입안자와 오피니언 리더들은 단순한 민족적 감정에 호소하거나 단기적인 이벤트에 집중하기 보다는, 정 책의 방향이 ‘시민적 가치’와 조응하는 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 다. 그 이유는 사회가 더 이상 민족교류 그 자체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북정책을 통해서 시민적 가치가 확산되 고 있다는 성과를 구체적으로 보여 주어야만 사회를 설득하여 장기 적인 교류협력 정책이 지속될 수 있다. 시민통일론에 근거한 ‘시민 적 가치’의 확장이 현 시점에서 통일 및 대북정책 수립에 크게 기여 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Notes

[1]통일론과 통일정책은 유사해보이지만 다른 개념이다. 통일론은 이데올로기적이 고 규범적인 성격이 강한 논의에 가깝다. 반면 통일정책은 통일론에 따라 실질 적인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것이다. 이 점은 글의 후반부에서 자세히 논하 도록 하겠다.

[2]한국의 정치지형에서 민족의 통일은 주로 진보진영에 의해 강조되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보수진영이 민족분단을 의도적으로 고착화시켜 자신들의 기득권을 재생산하였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진영 역시 국제질서의 변화 및 사회의 요구를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았으며 ‘민족’을 자신들의 프레임에 맞추어 수용하였다.

[3]본 논문에서 다루지는 않지만 당시 ‘민족’은 국가의 전유물만은 아니었다. 80년 대 학생운동은 국가와 외세의 제한에서 벗어나 통일된 민족을 상상하기도 하였 다. 하지만 이 운동은 지나치게 반미적이고 친북적인 성향을 띄었기 때문에 사 회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4]임수경, 문익환의 방북과 처벌이 대표적이다.

[5]구체적으로 가사는 다음과 같다. “금순아 굳세어다오. 북진통일 그날이 되면 손 을 잡고 울어보자. 얼싸안고 춤도 추어보자”

[6]박재흥은 세대론의 장·단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세대론은 몇 가지 약 점을 갖는다. 연속선상에 있는 사람들(출생시점이든 태도 측면에서이든)을 임의 적 기준에 따라 나누는 것도 그렇고, 동질적이라 볼 수 없는 어떤 연령층을 단 일세대로 명명하는 것도 그러하다. 이런 약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대담론 이 꾸준히 재생산되는 것은 '세대'개념만큼 시대 변화를 담아내는 은유로서의 매력을 갖는 용어가 별로 없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과거 역사를 요약 정 리하는 데 세대만큼 편리한 용어가 없고(예: 산업화 세대, 민주화세대) 현재의 시대풍속을 읽어낼 때도 세대론이 능력을 발휘한다(박재흥, 2009:30).”

[7]88만원 세대는 양극화된 노동시장이 탄생시킨 경제학적 개념에 가깝다. 비록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는 않다하더라도, 이들 세대 역시 앞서 언급한 가치들을 기본적으로 내장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8]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서태지는 신세대의 상징과 같은 인물이다. 흥미롭게 도 저자는 같은 책에서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시절 ‘서태지와 아이들’의 콘서트 장을 찾았다는 점을 언급한 바 있다.

[9]1972년 맹세문은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 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2007년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 합니다.”라고 변경되었다. 이는 개인의 조국인 국 가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고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점을 명시한 것이다.

[10]시실 정치적 주체를 지칭하는 개념(민족, 국민, 인민, 시민 등)이 학술적으로 논의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시민통일론 외에도 국민통일론, 인민통일론 등이 가능할 수는 있겠지만 이것이 아직까지 학술적 형태로 제시되지는 못하였다. 반면 민족통일론은 매우 장기간 논의되어 왔기 때문에 그 실체와 유래를 파악하는 것이 훨씬 용이하다고 할 수 있다.

[11]1999년 노벨상을 수상한 권터 그라스는 독일 통일을 ‘동독인들에게는 동독 사 회주의통일당의 ‘정치적 독재’부터 서독 자본의 ‘경제적 독재’로 이행한 것에 불 과하다.’라고 평가 절하한다(김누리, 2005: 303). 우리가 이 주장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만, 새겨들어야 할 사항이다.

[12]문성묵은 ‘대내 정책’을 국민의 의견을 결집하고, 내부적으로 전략과 조직을 수 립하는 것으로 보았고, ‘대북 정책’은 북한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의 문제로 보고 있다. 또한 ‘대외 정책’은 주변 강대국들과 어떠한 관계를 형성하여 통일 친화적 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인가를 고민하는 전략이라고 정의하고 있다(문성묵, 2015: 8).

[13]따라서 본 장에서 대내 정책의 측면은 별도로 다루지 않겠다.

[14]예컨대 당시 북한 체제의 세습을 상식이라고 표현 박지원 대표의 발언은 시민 권의 확장을 염두에 두지 못한 실언이라고 할 수 있다.

[15]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2007년 10.4 정상회담은 매우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당 시 노무현 정부와 여당은 향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낮음에도 불 구하고 북한과 대규모 경협을 약속하였다. 이는 대북정책의 지속성을 보장하기 보다는 보수적인 후임정부의 운신의 폭을 좁히게 하였다. 만일 이 당시 청와대 와 이명박 후보 진영 사이에 정책적 조율이 이루어졌다면 교류협력정책이 오히 려 지속될 가능성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16]예컨대 1975년 헬싱키 선언 수준을 목표로 삼거나, 현행 북한 형법을 부분적 으로 개선하게 유도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북한은 코소보 전쟁 당시 인권탄압국에 대한 ‘인도적 개입’이 진행되자 이를 매우 민감하게 받 아들였으며, 이후 2004년 실제로 형법을 개정하기도 하였다. 북한 역시도 열악 한 인권사항이 경제제재와 군사적 개입의 빌미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즉 사회주의 체제라는 큰 틀 안에서도 시민성을 증가시킬 수 있는 공간을 찾아 이 를 확장시키는 것이 정책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이점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노현종

은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서 북한학을 공부하였으며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석·박사 통합과정을 수료하였다. 또한 싱가포르 Nanyang Technological University, 캐나다 Simon Fraser University, 독 일 Humboldt University에서 수학하였다. 현재 박사논문 집필 중이며 주요 관심분야는 북한사회, 비교사회주의, 남북관계이다. 출간논문으로는 “북한 사회주의 신정체제의 종교사회적 기원(2016)”, “A Comparative Examination of the Ideal Political Leadership Outlined in The Huainanzi(淮南子) and The Prince(2017)”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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