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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대의 가족과 불교의 수행공동체*

 

Abstract

이 논문은 인공지능 시대의 가족은 수행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전제 하에 수행공동체로서의 가족이 되기 위해 살펴보아야 할 기본적인 조건 들을 불교의 승가공동체에서 찾아본 것이다. 2장에서는 수행공동체로서 의 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가족 구성원의 자기실현 혹은 개성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살펴보았고, 3장에서는 불교의 수행공동체인 승 가의 특징을 살펴보았으며, 4장에서는 승가가 수행공동체로서의 가족에 주는 시사점을 살펴보았고, 마지막 5장에서는 오늘날의 수행공동체와 그 특징을 살펴보았다.

Translated Abstract

This thesis aims at searching the basic conditions for the AI period family to become a cultivating community. In chapter 2 I sought the premise that the family should go through the Self-realization or Individualization. In chapter 3 I found out the peculiarity the buddhist community and in chapter 4 I looked for the implication which the buddhist community could teach the AI period family community. In chapter 5 I searched for the common characteristics of the cultivating community in these days.


인공지능 시대의 가족

I.

가족이란 무엇인가? 가족은 부부를 중심으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혹은 그 구성원을 말한다. 즉 혼인, 혈연, 입양을 중 심으로 한 혈연공동체를 뜻한다. 머독(G. P. Murdock)은 가족을 ‘공 동의 거주, 경제적 협력, 그리고 생식이라는 특성을 가진 사회집단 으로 성관계를 허용 받은 남녀와 그들에게서 출생하였거나 양자로 된 자녀들로 구성된다.’고 정의하였다(차선자, 2008: 47). 인류는 태 초부터 공동체의 최소 단위로 이런 특징을 가진 가족을 구성하여 살아왔다. 그러나 최근에 이러한 혈연공동체로서의 가족은 점차 변 화하고 있다.

2015년 11월 통계청의 ‘2015 인구주택 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 리나라 1인 가구의 수는 520만으로 전체 1900만 가구 중 27.2%를 차 지했다. 1, 2인 가구를 합치면 전체의 50%를 넘는다. 통계청에 따르 면 1인 가구는 2025년 31.3%(685만 2천 가구), 2035년에는 34.3%(762 만 8천 가구)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1인 가구를 가족의 형태에 포함시킬 수 있을까? 그래도 가족이라고 하면 2인 이상의 집단을 의미하기 때문에 1인 가구는 가족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현대 가족의 해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1인 가구를 제외하더라도 오늘날 가족의 형태는 맞벌이 부부 가족인 딩크족, 편부·편모 가족, 조손 가족, 동성커플 가족, 공동체 가족 등으로 다양하게 분화되고 있다. 이중 눈에 띄는 현상은 바로 공동체 가족, 혹은 사회적 가족이다.

공동체 가족의 등장이 의미하는 것은 가족이 더 이상 혈연과 혼 인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록 혈연관계가 없더라도 취미와 형편을 공유하는 이들이 한 울타리 속에 모여 새로운 공동체 가족 혹은 사회적 가족이 만들어지고 있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는 ‘소 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이란 뜻의 소행주가 있다. 소행주는 2011년 3월 1호 9가구가 입주한 이래 지금까지 성미산 일대 4호를 비롯 10 호까지 세워졌다. 소행주는 한 건물에 살지만 각자 독립된 주거공간 이 있고, 공동부엌과 커뮤니티룸 등 일부분만 함께 쓰는 ‘코하우징’ (공유주택)이다(조현, 2018). 소행주 사람들은 아빠들끼리 2박3일간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추석과 구정 후엔 엄마들끼리만 가는 엄마 여행도 있다. 그리고 여름휴가철엔 모든 소행주 가족들이 다 함께 여행을 가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문을 연 소셜하우징 회사, ‘셰어하우스 우주 (WOOZOO)’는 오래된 집이나 너무 큰 집, 혹은 비어 있는 집을 빌 려 리모델링 혹은 홈스타일링을 하여 다시 청년들에게 합리적인 가 격으로 빌려주는 사회적 기업이다. 단순히 집을 같이 사용하는 기존 의 셰어하우스와는 달리 셰어하우스 우주는 구성원들이 가정 구성 원의 역할을 분담함으로써 새로운 사회적 가족을 만드는 역할을 하 고 있다. 셰어하우스 우주 홍대점 14호에는 7명의 청춘남녀가 어우 러져 살고 있는데, 입주 전 선택에 따라 1인실, 혹은 2인실을 사용 하고, 주방과 거실은 공용으로 사용하면서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가 고 있다.

향후 인공지능 시대의 가족은 이와 같은 사회적 가족의 형태가 주류가 될 것이다. 또한 인공지능의 발달은 가족이 현재 가지고 있 는 경제적 기능을 해체하게 될 것임으로 새로 만들어지는 사회적 가족은 경제적 역할의 분담이 아닌 다른 목적을 갖게 될 것이다. 그 다른 목적 중에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이 수행 중심의 공동체 가족 이다.

인공지능 시대의 가족이 수행공동체가 될 것이라는 주장의 근거 는 크게 2가지이다. 그 한 가지는 가족이 갖는 경제적 기능의 소멸 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근대 가족은 주로 농업에 종사했으므로 대가족이 가족의 중심 형태였다. 전근대의 농업은 집약적 노동을 요 구하였기에 많은 가족이 함께 일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었다. 대 가족뿐만 아니라 마을 단위의 협업이 필요했기에 마을공동체의 형 성도 매우 중요하였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이중으로 자유로운 노동자의 형성’을 기점으 로 내세운 자본주의의 대두와 함께 이런 대가족 중심의 가족형태는 핵가족으로 바뀌었다. 인클로저 운동으로 아무런 생산수단도 없이 농지에서 쫓겨난 이들 ‘이중으로 자유로운’ 노동자들은 몸뚱이 하나 만 가지고 대도시로 몰려들어 산업예비군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적은 임금으로 대가족의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불가능하였으므로 자연히 부모와 자녀 중심의 핵가족이 자본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가족 형태 가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 시대에는 어떤 가족 형태가 중심이 될까? 인 공지능 로봇이 생산을 대신하게 되면 로봇을 소유한 소수의 사람들 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본소득에 의지하여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처럼 임금소득자를 만드는 가족의 역할 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즉 보다 높은 노동력의 가치를 위해 자식들 을 먹이고 가르치고 학교에 보내는 등의 모든 노력이 무의미하게 된다는 뜻이다.

로봇세를 걷어 모든 사람들에게 분배하는 기본소득은 아마 의식 주에 필요한 최소한의 금액에 그치게 될 것이다. 또한 인공지능 시 대에는 대부분의 가정이 태양에너지 등의 대체에너지를 활용하여 에너지 자급을 이루고, 또 3D, 혹은 4D 프린터를 통해 필요한 물건 을 만들어 사용하게 될 것이므로 많은 액수의 기본소득이 필요하지 도 않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가족은 무엇을 할 것인 가? 아니 가족이라는 것이 계속 존속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 시대의 가족은 전근대나 현대와 같은 혈연 중심의 가족 형태는 아닐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같은 취미나 관심을 공 유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사회적 가족이 중심이 될 것이다. 좀 더 먼 미래에는 『멋진 신세계』 등의 공상과학소설과 같이 남녀 의 성교를 통해 자식을 잉태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를 통해 아이를 만들어내게 될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이를 만들어내려 는 사람들이 있다면 아이들을 필요로 하는 그 사람들과 아이들을 중심으로 여전히 가족을 형성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형태의 가족의 삶은 무엇일까? 우리는 이런 미래 의 가족이 수행공동체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노동이 없는 삶에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그것을 알고 싶으면 전근대에 유 한계급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살펴보면 된다. 그들은 바로 수행을 삶 의 중심에 놓고 살았다. 물론 대부분의 유한계급은 수행이 아니라 음식남녀와 같은 본능을 충족시키는 것을 목표로 삶을 영위하였다. 그러나 소수의 고귀한 유한계급들은 대부분의 여가 시간을 깨달음 을 얻기 위한 수행으로 활용하였다.

전근대 사회에서는 유한계급은 수행을 통한 깨달음을 노동계급에 제공하고 노동계급은 그들이 성취한 깨달음을 얻는 대가로 유한계 급을 먹여 살리는 수행과 노동의 교환으로 불평등을 정당화하였다. 불교의 수행공동체인 승가는 형성 초기부터 승가 구성원들과 재가 신자들이 법시(法施)와 재시(財施)를 교환하는 이상적인 관계를 설정 하였다. 같은 맥락에서 『맹자』는 사지(食志)노동과 사공(食功)노동을 구별하여 유학의 이상을 위해 노력하는 노심자(勞心者)를 재화와 용 역을 생산함으로써 먹고 사는 노력자(勞力者)들이 먹여 살려야 한다 고 주장하였다.1)

유교문화권 가운데 가장 철저하게 그 이념을 실천하고자 했던 조 선 사회는 맹자의 사지노동을 과거제도를 통해 구체적으로 실현하 고자 하였다. 조선을 건국한 사대부들은 과거시험을 통해 뽑고자 하 는 인물을 첫 번째로 ‘경전에 밝고 행실을 닦아 도덕을 겸비하여 다 른 사람의 스승이 될 만한 자[經明行修 道德兼備 可爲師範者]’로 정 하였다. 이와 같은 교육적 인간상은 ‘문장을 통해 나라를 빛내는 선 비[文章華國之士]’라는 고려시대 과거제도의 목표와 확연히 구분되 는 것이었다. 일본의 어느 학자가 주장했듯이 조선 철학은 중국 철 학보다 독창성은 압도적으로 적지만 그 철저성은 바늘구멍처럼 세 밀한 이론을 통해 강대한 폭탄이 되어 권력 중추를 위협했던 것이 다.2)

수행공동체로서의 가족의 형성 과정

II.

수행공동체로서의 탈현대가족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수행 공동체 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융이 말하는 자기실현 혹은 개성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수행공동체로서의 가족이 형성되는 과정은 크게 3 단계를 거친다. 첫 번째 단계는 주술과 환상의 공동체 가족이다. 이 는 전근대사회의 대가족의 특징과 같다. 주술과 환상의 공동체 가족 의 핵심적인 관계는 부모-자식의 관계이다. 이런 공동체 가족 속에 서 아이들은 세 가지 방식으로 경험을 해석한다(제임스 홀리스, 2018: 19).

  1. 촉각과 감정의 유대감 또는 부족함을 삶 자체에 대한 것으로 현상학적으로 해석한다. 예측 가능하고 내게 좋은가, 아니면 불확실 하고 아프고 불안정한가? 이런 근원적 인식으로 아이는 신뢰 능력 을 형성한다.

  2. 부모의 특정 행동을 자신을 향한 것으로 생각하고 마음속에 간직한다. 부모의 우울함이나 분노, 불안을 사실상 자신 때문에 일 어나는 것으로 해석한다. ‘엄마 아빠가 나를 보거나 대하는 모습이 진정한 나’라고 결론짓는 것이다.

  3. 삶과 씨름하는 부모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아이는 행동 그 자 체뿐 아니라 그 안에 감춰진 개인과 세계에 대한 태도까지 내면화 한다. 그로부터 아이는 세상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해 중요한 결론을 도출한다.

주술과 환상의 공동체 가족 속에서는 가족 속에서의 역할 즉 누 군가의 배우자, 부모, 가장과 같은 제도화된 역할이 자신의 정체성 을 결정한다. 아이들은 부모의 실재 세계에 의존하여 살아간다. 육 체적 의존도 물론 크지만 아이가 자신을 가족과 동일시하기에 정신 적 의존이 더욱 크다. 이런 의존 속에서 부모 콤플렉스와 집단 콤플 렉스가 자아를 형성하고 성인이 되기 위해 사회가 제시한 역할에 투사하는 힘으로 그 자아를 지탱한다.

두 번째 단계는 융의 제1차 성인기에 해당되는 페르소나와 투사의 공동체 가족이다. 이 공동체 가족의 핵심적인 관계는 자아-세계이다. 물론 두 번째 단계의 가족은 현대사회의 핵가족의 특징과 일치한다. 현대 가족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사회를 통합하던 거대 이데올로기 가 그 힘을 상실하면서 개별 가족이 고립된 섬처럼 존재한다는 것이 다. 매슈 아널드가 150년 전에 지적한 대로 현대 가족은 ‘두 가지 세 계 사이에서, 즉 죽은 세계와 태어나면서부터 무력한 세계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제임스 홀리스, 2018: 34). 미르체아 엘리아데나 조지 프 캠벨 같은 이들은 신에 대한 종족의 비전과 영적인 연결이 없는 현대의 가족은 인생의 각 단계에서 그 어떤 길잡이도, 따라 할 방식 도, 도움도 얻지 못한 채 방황할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그 속에서 핵가족은 결혼, 부모 되기, 직업적 경력이라는 사회 제 도로 투사한다. 결혼의 투사는 ‘내 삶을 좀 더 의미 있게 만들기 위 해 당신에게 의지하겠어.’ ‘당신이 날 위해 언제나 거기 있어줄 것이 라고 기대해.’ ‘당신이 내 맘을 읽어 내 모든 욕구를 미리 알아주길 기대하고 있어.’ ‘당신이 내 상처를 봉합해주고 내 삶의 모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길 바라.’ ‘당신이 날 완성시켜주길,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길, 상처받은 내 영혼을 치유해주길 원해’와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제임스 홀리스, 2018: 56).

부모 역할 또한 개별 가족이 강력하게 정체성을 투사하는 영역이 다. 개별 가족 속의 대부분이 부모들은 자식에게 무엇이 맞는지 잘 안다고 생각하며, 자식에게 자신의 부모가 저지를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우리는 필연적으로 자신이 살지 못한 삶을 자식에게 투사하는 잘못을 저지르게 마련이다. 융은 아이가 짊 어져야 할 가장 큰 짐이 부모가 살아보지 못한 삶이라고 말했다.

현대 가족에서 직업적 경력 역시 중요한 투사의 대상이다. 일은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며, 그것의 상실은 정 체성의 혼란을 가져온다. 그러나 융은 직업과 소명을 구별하여 직업 은 돈을 벌어 경제적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인 반면 소명은 삶 의 에너지를 실현하도록 요청받는 것이라고 하였다. 스스로 충분히 생산적이라고 느껴야 개성화를 이룰 수 있으며, 자신의 소명에 응답 하지 않으면 영혼이 상처를 입는다. 소명은 우리 선택이 아니다. 소 명이 우리를 선택한다. 우리는 거기에 어떻게 반응할지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제임스 홀리스, 2018: 155).

현대가족은 지금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다. 우울증, 알콜중독, 성 적 흥분을 위한 대마초 흡연, 혼외정사 등 가족을 해체하는 현상들 이 곳곳에 널려 있다. 이러한 위기를 시모주 아키코는 ‘가족이라는 병’이라고 부르고 제임스 홀리스는 ‘중간항로’라고 불렀다. 시모주 아키코는 『가족이라는 병』을 통해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개인을 희 생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시모주 아키코, 2015). 비행 기 사고가 나면 일본인이 타고 있는지 여부가 중요하고, 명절이 되 면 귀성인파로 고속도로가 막히는 현상을 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공동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배타성을 에너지로 삼 고 있기 때문에 그 속에 개인은 매몰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 자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가족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관리인 을 모집하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를 존중하며 사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다(시모주 아키코, 2015: 115). 그런데 저자가 간과하 고 있는 것이 있다. 그 개인이라고 하는 것 역시 타인에 대한 배타 성을 내적 에너지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서구에서는 ‘자유로운 개 인의 공동체’라는 근대 계몽주의자들의 이상이 이미 무너져 내렸지 만, 아직 개인주의가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일본에서는 이런 주장들 이 설득력 있게 전파되는 모양이다.

기대한대로 되지 않았다는 배신감과 투사가 사라짐으로써 나타나 는 공허함이 현대가족을 위기로 이끌고 있다. 현대가족이 중간항로 에서 겪는 가장 강력한 충격 중 하나는 우리가 암묵적으로 우주와 맺었던 계약, 다시 말해 우리가 옳게 행동하고 선의를 지니면 모든 일이 제대로 풀릴 거라는 생각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충격은 ‘자아의 우월함’이라는 환상이 깨지는 일이다. 이는 니체가 자신이 신이 아님을 깨닫게 될 때 인간이 얼마나 당황하고 경악하는지에 관해 묘사한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융도 자신이 자기 집의 주인이 아님을 깨달을 때 일어나는 전율이 어떤 것인지 강조 했다. 이는 마치 『성경』 속의 욥처럼 우리는 모든 환상이 무너진 채 오물 더미 위에 걸터앉아 대체 어디부터 잘못되었는지 혼란에 빠진 모습과 같다(제임스 홀리스, 2018: 86). 그러나 사실은 이러한 위기 속에서 우리는 부모 콤플렉스와 집단 콤플렉스를 벗어나 진정한 수 행공동체로서의 가족을 형성할 수 있다.

사회적 가족으로서의 수행공동체 가족은 융이 말하는 제2차 성인 기의 모습과 같다. 융은 제2차 성인기의 과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Jung. C. G., 1977: 553).

청년은 인생을 살면서 자연스레 자신의 유년기와 유년기의 부모에 대한 의존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무의식적 근친상간의 굴레에 몸과 영혼이 묶이고 만다. … (중략) 공포는 도전이자 과제다. 대담해져야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제를 받아들이 지 않으면 삶의 의미 자체가 침해당하며 미레 전체가 희망 없는 진부 함에, 단조로운 잿빛 환영에 빠지는 운명을 맞는다.

또 융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길(imitatio Christi)은 그 옛날 나사렛의 목수 아들처럼 사는 게 아니라 예수가 그리스도의 삶을 산 것처럼 자신의 개성화 과정인 소명을 따라가는 것이라고 말했다(Jung. C. G., 1983: 81).

도마복음에는 ‘네 안이 깃든 것을 일깨운다면 그것이 너를 살릴 것이요,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너를 죽일 것이다.’라고 했다. 늪에서 탈출하기보다는 오히려 늪 속으로 용감하게 뛰어들어 무엇 이 새로운 삶을 기다리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개성화 과정 에서 가장 먼저 만나야 하는 것은 그림자이다. 자신에게 솔직할 수 만 있다면 우리는 자기 자신의 이기심, 의존 성향, 두려움, 질투, 그 리고 파괴적인 능력까지도 파악할 수 있다. 분명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겠지만 무작정 밝기만한 페르소나보다 더 완성된 형태이며 더 인간적이다. 로마시대 시인 테렌티우스는 ‘인간에 대해 어떤 것도 남의 일로 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림자가 없는 사람은 놀라울 정도로 평범할 뿐 아니라 매력이 없다. 부정적 그림자 안에 들어 있는 분노, 욕망, 화 등은 무의식 수 준에서 발현하면 해로운 수 있으나 의식 수준에서 받아들이면 새로 운 방향과 에너지를 준다. 그림자는 의식 수준의 성격보다 훨씬 강 력하지만 아직 써보지 못한 삶의 에너지이며, 이를 막아버리면 생기 또한 줄어든다.

우리 안에 있는 그림자와 대화를 나눔으로써 우리는 타인에 대한 증오와 질투 등 수많은 투사를 없앨 수 있다. 타인의 문제에 갇혀 신음하기보다 나의 개성화에 더욱 집중하는 것이 수행공동체로서의 가족이 해야 할 일이다. 융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선험적으로 무의식적인 존재이지만, 자신의 고유한 특질을 의식할 때만 의식 안 에 존재할 수 있다. 개인성을 의식 수준으로 끌어올리면 다시 말해 외부의 대상과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상태를 넘어서려면 의식적으로 차이를 만드는 과정, 즉 개성화가 필요하다(Jung. C. G., 1976: 673-674).” 융이 말하는 외부 대상과의 동일시는 개인이 어려서는 부 모의 현실과, 자라서는 부모 콤플렉스 및 사회제도의 권위와 동일시 하여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일을 가리킨다.

불교 승가의 구성 원리

III.

불교의 수행공동체인 승가는 기원전 5세기 후반 무렵 인도에서 만들어진 인류 최초의 공동체이며 오늘날에도 유지되고 있는 가장 오래된 공동체이다. 그런 측면에서 승가는 인공지능 시대의 수행공 동체로서 가족 공동체가 참조해야 할 많은 보물을 가지고 있다. 『잡 아함경』에는 다음과 같은 부처와 아난의 대화가 있다(강건기, 1988: 34).

대덕이시여.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들이 참다운 친구를 사귀고 착 한 벗들과 함께 있다는 것은 우리가 닦는 도의 반은 이룩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습니까?”라고 아난다가 물었다. 이에 답하여 부처님 은 “아난다여, 그게 아니다. 그리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아난다여, 우리가 참다운 벗을 사귀고 선한 벗들과 함께 있다는 것은 도의 절반을 이룬 것이 아니라 그 전부이니라.

이처럼 공동체는 수행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깨달음의 에너지 는 혼자 있을 때보다 여럿이 함께 있을 때 훨씬 큰 시너지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물론 혼자 동굴 속에 들어가 수행하여 깨달음에 이를 수도 있다. 홀로 연기(緣起)의 이치를 주시하여 깨달은 자, 연 각(緣覺) ·벽지불(辟支佛), 독각승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독각승은 드물고 또 위험하다.

동안거와 하안거를 하는 승려들이 한 곳에 모여 참선을 하는 까 닭은 그들의 수행에너지가 상승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 한 사람의 깨달음은 곧 바로 그 옆 사람에게 전해진다. 그래서 많은 깨달음을 얻은 스승들이 여러 수행자들이 함께 모여 수행하는 붓다 피일드를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수행공동체로서의 승가에는 8가지의 미증유법이 있다고 한다. 그 8가지는 다음과 같다(히라카와 아키라(平川彰), 2003: 34).

  • 첫째, 바다는 점점 깊어지듯 불타의 법과 율도 수행으로 점차 깊어 지는 것이다. 홀연히 요지(了知), 통달하는 것이 아니다.

  • 둘째, 바다에는 상법이 있어 물이 언덕을 넘치는 일이 없듯이 불타 가 제정한 계율을 제자들은 목숨을 잃는 인연이 있더라도 넘어서는 안 된다.

  • 셋째, 바다는 죽은 시체와 공주하지 않듯이 상가에 파계, 악법, 부정 한 사람이 있으면 상가는 집회를 열어 그를 들어낸다.

  • 넷째, 세간에 있는 큰 강도 바다에 도달하면 이름을 버리고 다만 바 다라고 이름하듯 집을 버리고 출가하면 앞의 성명을 버리고 다만 사문 석자(沙門釋子)라고만 부른다.

  • 다섯째, 바다는 늘어나거나 줄어들지 않듯이 비구들이 아무리 많이 무여의열반계(無餘依涅槃界)에서 반열반(般涅槃)을 하더라도 그것으로 해서 무여의열반계에 증감이 없다.

  • 여섯째, 바다는 하나의 맛인 짠맛만 가지고 있듯이 이 법과 율은 하 나의 맛인 해탈미를 가지고 있다.

  • 일곱째, 바다에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보물이 있듯이 승가에는 사 념처, 사정근, 사신족, 오근, 오력, 칠각지, 팔성도가 있다.

  • 여덟째, 바다에는 커다란 생물이 살고 있듯이 승가도 예류(預流), 일 래자(一來者), 불환자(不還者), 아라한(阿羅漢) 등의 주처이다.

승가는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들어올 수 있으며, 또한 원하는 사 람은 언제든지 나갈 수 있었다.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뒤 범천의 권 청에 의해 설법을 하기로 결의했을 때, “감로의 법문은 열려 있다. 귀가 있는 사람은 누구나 들어라.”라고 했듯이 누구나 승가에 들어 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들어올 수 있었다. ‘오너라, 비구여(善來 比丘)’라고 하는 것이 초기의 구족계였던 것이다.

또한 승가로부터 나갈 때도 어떠한 제한도 없었다. 『남해기귀내 법전』에 의하면 발트리하리라는 사람은 수승한 법을 열망하여 출가 했으면서도 재가생활을 잊지 못하여 세속으로 돌아가기도 하였는데 이처럼 재가와 출가를 왕복한 것이 일곱 번이었다고 한다(히라카와 아키라(平川彰), 2003: 114)

그러나 일단 승가에 들어오면 규칙을 지켜야 하였다. 계율은 승 가가 제대로 유지되는 데 꼭 필요한 것이고, 불법승 삼보 중 승가가 지탱되고 보존될 수 있도록 하는 근간이 되는 것이다. 불교 경전의 세 부류인 경, 율, 론에서 율이 바로 승가의 규칙인 계율이다. 계율 공부는 계정혜 삼학 중 가장 중요한 공부였다. 『잡아함경』에는 다음 과 같은 구절이 있다(목경찬, 2014: 165).

세 가지 공부가 있다. 어떤 것이 셋인가. 이른바 뛰어난 계율의 공부 [增上戒學]와 뛰어난 마음의 공부[增上意學]와 뛰어난 지혜의 공부[增上 慧學]이다. 어떤 것이 뛰어난 계율의 공부인가? 만일 비구가 계율의 바 라제목차에 머물러 위엄 있는 태도와 행동을 갖추어, 조그만 죄를 보고 도 두려움을 내어 계율을 받아 지니고 공부한다면 이것을 뛰어난 계율 의 공부라고 한다. 어떤 것이 뛰어난 마음의 공부인가? 만일 비구가 모 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 거친 생각과 미세한 생각은 있지만 욕계의 악을 떠난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초선(初禪)에 완전히 머무르 고 나아가 제4선에 완전히 머무른다면 이것을 뛰어난 마음의 공부라고 한다. 어떤 것이 뛰어난 지혜의 공부인가? 만일 비구가 이것은 괴로움 의 거룩한 진리[苦聖諦]라고 참되게 알고, 이것은 괴로움의 원인의 거 룩한 진리[苦集聖諦], 이것은 괴로움 없어짐의 거룩한 진리[苦滅聖諦], 이것은 괴로움을 없애는 길의 거룩한 진리[苦滅道跡聖諦]라고 참되게 알면 이것을 뛰어난 지혜의 공부라고 한다.

증상이란 거룩하고 굳센, 뛰어난, 강성한이라는 뜻이 있다. 불교의 계율은 한꺼번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조금씩 필요에 의해 만들어 졌다. 『밀린다왕문경』에는 밀린다왕과 나가세나의 다음과 같은 대화 가 수록되어 있다(김성규, 2018(1): 38-39).

“존자여, 부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예견한 분이 맞습니까?”

“대왕이시여, 그렇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아실 뿐만 아 니라 모든 것을 다 예견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부처님께서는 어째서 비구승단의 계율을 한꺼번에 제정하 지 않으시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나씩 하나씩 정했습니까?”

“대왕이시여, 이 세상에 있는 의약을 다 알고 있는 의사가 있습니까?”

이에 왕이 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나가세나는 다시 묻습니다.

“의사는 환자가 병들었을 때 약을 줍니까, 아니면 병이 나기도 전에 약을 줍니까?”

“병이 난 다음에 약을 줍니다. 그래야 환자가 약을 먹고 낫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고 예견하신 분이시지만 적당하지 않 을 때는 계율을 정하지 않았습니다. 수행생활 중 누군가가 수행에 지장 이 되는 행동을 하였을 때 계율을 제정하여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승가의 계율은 수행 과정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에 다시는 그런 행동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정한 것이지, 사전에 무 엇을 지키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 이를 수범수제(隨犯隨制)라고 한 다. 『사분율』 제1권에는 다음과 같은 붓다의 말이 있다(목경찬, 2014: 172).

… 앞으로 비구들이 명예나 이해관계에 얽히게 되면 허물을 범하게 될 것이다. 그때 그것을 막기 위해 비구들에게 계율을 제정하여 줄 것 이다. 그러나 아직은 잘못된 일이 없으므로 그럴 필요가 없다. 해지지 않은 새 옷을 미리 기울 것은 없지 않느냐.

불교 교단이 만들어지고 야사비구가 출가하면서 친구 50명이 따 라서 출가했으며, 가섭 3형제가 출하함으로써 1,000명이 넘는 거대 한 승단이 이루어졌지만 바로 계율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계율은 최초의 승단이 만들어진 8년 후에 처음 제정되었다.

계와 율은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만 엄격히 말해 계와 율은 그 근원에서 차이가 있다. 계는 불교의 수도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 람이 자발적으로 지켜야 할 실천 덕목을 말한다. 계의 어원은 시라 (尸羅)로서 행위, 관습, 도덕 등의 뜻이다. 이에 반해 율은 승가의 질 서 유지를 위해 필요한 타율적인 행위규범을 말한다. 율의 원어는 비니(毘尼) 또는 비나야(毘奈耶)로서 ‘조복(調伏)’으로 번역된다. 즉 신구의 악업을 다스리고 멀리한다는 뜻이다.

최초의 계율이 제정된 것은 수디나라는 비구 때문이었다. 수디나 비구는 매우 부유한 집 출신인데 부처가 베샬리에 있을 때 흉년이 들었다. 탁발로 걸식을 하지 못하게 되자 수디나는 부처의 허락을 받아 많은 승려들을 이끌고 고향으로 가서 먹는 문제를 해결하였다. 그러나 고향에 돌아온 수디나는 부모의 강요에 의해 재산을 물려줄 아들을 낳게 된다. 이를 계기로 제정된 최초의 계율이 ‘음행을 하지 말라.’는 계율이다. 부처는 수디나의 일로 모든 수행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김성규, 2018(2): 32-37).

차라리 남근을 독사의 아가리에 넣을지언정 여자의 몸에는 대지 마 라. 이와 같은 행위는 지옥에 떨어져 헤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애욕은 착한 법을 태워버리는 불꽃과 같으며 지혜의 종자를 없애버린다. 애욕 을 떠나야만 도를 깨닫고 열반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 수디나가 어 리석어 잘못을 저질렀으니 이제부터는 계율을 제정하여 지키게 하라.

도둑질을 하지 말라는 계율과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계율은 수디 나 사건 이후 ‘다니가’라는 비구 때문에 제정된다. 다니가는 절을 짓 기 위해 나라의 목재를 관리하는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여 목재를 얻어 절을 짓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근본 계율이라고 하는 5계가 만들어진다(김성규, 2018(2): 37).

이후 승가의 계율은 바라제목차라 불리는 『계경』으로 확대된다. 바라제목차는 계율 조목 하나하나를 말한다. 이를 ‘별해탈(別解脫)’ 이라고 의역하는데 이는 계율 조목 하나하나를 지닐 때마다 별도 로 번뇌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살생하지 마라는 계율을 지닐 때 그와 관련된 번뇌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게 된다.

『계경』은 4조의 바라이법, 13조의 승잔법, 2조의 부정법, 30조의 사타법, 90조의 바일제법, 4조의 바라제제사니법, 75조의 중학법, 7 조의 멸쟁법의 8단으로 나뉘어 있다. 바라이라고 하는 것은 마치 머 리가 잘린 사람이 재차 신체와 결합하여 살아날 수 없듯이 비구가 부정한 법을 행하면 사문(沙門)이 아니고 석자(釋子)가 아니라는 뜻 이다. 승잔은 돌길라라고도 하는데 돌길라는 의역하여 악작(惡作)이 라고 번역된다. 예를 들어 물건을 훔치려고 도구를 가지고 나가면 돌길라이다. 훔치려고 생각하는 물건에 손을 대어 움직이면 투란차 죄이다. 그 물건을 그 장소에서 옮기면 바라이죄가 된다.

승가는 화합을 기본으로 한다. 그 화합의 구체적인 방법으로 계 (戒), 견(見), 이(利), 신(身), 구(口), 의(意)의 이른바 육화경(六和敬)을 제시하고 있다. 「사분율」에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강건기, 1988: 38). “여기 기억하고 사랑하고 존중해야 할 여섯 가지 화 합하는 법이 있다. 이 법에 의지하여 화합하고 다투는 일어 없도록 하여라. 첫째, 같은 계율을 같이 지켜라. 둘째, 의견을 같이 해라. 셋 째, 받은 공양을 똑같이 수용하라. 넷째, 한 장소에 같이 모여 살아 라. 다섯째, 항상 서로 자비롭게 말하라. 여섯째, 남의 뜻을 존중하 라.”

승가에서 살펴본 가족 수행공동체의 고려사항

IV.

수행공동체로서의 가족에 승가와 같은 복잡한 규율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규율이 필요하다고 해도 수범수제(隨犯隨制)의 승가의 원리와 같이 그때그때 필요에 의해 만들면 될 것이다. 모든 규율은 수행공동체로서의 가족이 깨달음을 얻기 위한 최상의 조건을 창출 하는데 있다. 수행공동체의 모든 노력은 가족이 붓다필드가 되는 목 적을 실현하기 위한 최소한의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 서 앞에서 살펴본 불교의 수행공동체 사례를 통해 수행공동체로서 의 가족을 구상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을 열거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구성원의 성격과 규모 그리고 새로운 구성원을 어떻게 받아 들일 것인가이다. 불교 수행공동체는 깨달음이라는 공동의 목표가 있지만 인공지능 시대의 가족 공동체는 취미와 수행방법에 있어 다 양한 모습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한 공동체의 성격에 따라 규모 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가족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과 정에 대한 규정이 있어야 한다. 최소한 어떤 조건을 충족시켜야 받 아들일 것인가? 어떤 절차를 거쳐 받아들일 것인가?

불교의 상가는 처음에는 선래비구(善來比丘)로 누구나 원하면 승 가에 참여할 수 있었지만, 후에는 10인 이상의 비구로 조직된 승가 에서 전원의 찬성에 의해 구족계를 받아 비구가 되었다. 구족계 의 식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먼저 계단에 10인 승가가 모여야 한다. 그 자리에서 수계희망자는 10인의 비구에게 일일이 머리를 발에 대 고 승가에게 예배한다. 이것이 끝나면 옷 입는 법을 가르친다. 다음 에 발우의 수지를 가르친다. 다음으로 화상을 구한다. 화상이 정해 지면 교수사를 선임한다. 교수사가 결정되면 수계희망자에게 가서 차난(遮難)을 조사한다. 차난은 첫째, 남자일 것, 나이가 만 20이상일 것, 부모의 허락을 받았을 것, 관인이 아닐 것, 노예가 아닐 것, 부 채가 없을 것 등으로 20여개의 항목이 있다. 구족계 받기를 청하기 를 3번 하면 구족계 갈마를 한다.

두 번째 고려 사항은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규율이다.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규율은 승가공동체와 같이 화합을 그 목적 으로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승가공동체에서 계율을 지키는 것은 모든 수행의 시작이자 근본이다. 서산대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3)

음란하면서도 참선하는 것은 모래를 쪄서 밥을 지으려는 것 같고, 살생하면서 첨선하는 것은 제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는 것 같으며, 도 둑질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새는 그릇에 가득 차기를 바라는 것 같고, 거짓말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똥으로 향을 만들려는 것과 같으니, 비록 많은 지혜가 있더라도 다 마(魔)의 도를 이루리라.

승가에서 화합이라고 하는 것은 포살, 자자, 갈마와 일상적인 행 사를 함께 한다는 뜻이었다. 이처럼 수행공동체로서의 가족도 공동 체를 유지하기 위해 이와 같은 화합 절차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포살은 승려들이 매월 15일과 30일에 모여 계경(戒經)을 설하고 들으면서, 보름 동안 지은 죄가 있으면 참회하여 선을 기르고 악을 없애는 수행법(修行法)이다. 바라제목차라고 하는 것은 계율의 조문 을 모은 것이다. 하나하나의 조문을 학처(學處)라고 한다. 포살에서 는 전원이 바라제목차를 암송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 가운데 한 사 람이 일어나 고성으로 암송하고 다른 비구는 앉아서 듣는다. 한 구 절씩 암송이 끝나면 그때마다 전원에게 향하여 지난 반월 동안 이 러한 조문에 위배되지 않았는지를 묻는다. 위배한 것이 있는 자는 죄를 발로(發露)하고 참회해야 한다. 『사분율비구계본』에 의하면 포 살 집회의 절차는 다음과 같다(히라카와 아키라(平川彰), 2003: 351).

“대중 승가는 모였습니까?” 대답하기를 “대중승가는 모였습니다.”

“화합합니까?” 대답하기를 “화합합니다.”

“구족계를 받지 않은 이는 밖으로 나가십시오.” 있으면 내보내고 대 답하기를 “구족계를 받지 않은 이는 이미 나갔습니다.”라고 말하고 없 으면 대답하기를 “이 가운데 구족계를 받지 않은 이는 없습니다.”라고 한다.

“오지 않은 여러 비구의 욕 및 청정을 말하십시오.” 법에 의거하여 말하기를 마치면 대답하기를 “욕을 다 말하였습니다.”라고 하고, 없으면 대답하기를 “이 가운데 욕을 말한 이가 없습니다.”라고 한다.

“누군가 비구니를 보내 와서 교계를 청하였습니까?” 비구니의 청을 받은 이가 있으면 대답하기를 “교계를 청하였습니다.”라고 하고, 없으면 대답하기를 “이 가운데 비구니가 와서 교계를 청한 이가 없습니다.”라 고 말한다.

“승가는 지금 화합하여 무엇을 하려 합니까?” 대답하기를 “설계 갈마 를 합니다.”라고 한다.

승가의 갈마에는 백갈마(白羯磨), 백이갈마. 백사갈마의 세 종류가 있다. ‘백에 대해 찬성하는 이는 침묵하고 반대하는 이는 의견을 말 하십시오.’라고 하는 것이 갈마이다. 전원이 찬성하고 전원이 같은 의견이라는 것이 화합승의 의미이다. 백사갈마라고 하는 것은 백 다 음에 갈마를 3회 반복하는 것으로 중요한 문제의 결정에는 이 방법 이 채용된다.

세 번째 고려 사항은 새로 참여한 구성원에 대한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승가공동체의 경우 승가의 허가를 받아 사미가 되면 구성원 중 한 명이 출가아사리가 되어 10계를 주고 이후에는 비구 화상이 교육을 한다. 『아함경』의 십선업도(十善業道)는 살생의 원리 (遠離), 불여취(不與取)의 원리, 애욕에 있어서 사행(邪行)의 원리, 망 어(妄語)의 원리, 이간어(兩舌)의 원리, 추악어(麤惡語)의 원리, 기어 (奇語)의 원리, 무탐(無貪), 무진(無瞋), 정견(正見)이다. 출가아사리란 자기를 출가시켜 사미계를 주는 사람이다. 교수아사리란 구족계 의 식 때 차난(遮難)의 유무를 조사하는 사람이다. 갈마아사리란 구족계 의식 때 백사갈마를 진행하는 비구를 말한다. 의지아사리란 화상이 부재일 때 화상을 대신해서 제자를 지도해주는 비구를 말한다. 수법 아사리란 교법이나 계율 등을 교수해주는 스승을 말한다.

승가는 교육의 장인 동시에 생활의 장이다. 승가에서 제자를 지 도해주는 책임자 비구를 화상(和尙)이라고 한다. 화상은 승가에서 지 정해주는 것이 아니고 새로 온 비구가 스스로 찾아야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출가해서 상가에 들어와 수행하고 싶으면 먼저 화상이 되어 줄 비구를 찾아야 한다. 그 화상이 제자에게 구족계를 주는 것 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면 제자를 위해 의발을 구해주고 사미계와 구 족계의 의식을 가르친 뒤에 출가아사리를 위촉하고 구족계 의식을 위하여 10인 승가를 간청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미래의 가족 수행공동체도 새로운 구성원을 교육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동체의 차서를 정하는 일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승가공동체의 경우 먼저 출가한 이가 선배가 된다. “비구들이여. 연 장자의 순서로 경례, 영역, 합장, 공경, 제일좌, 제일수, 제일식을 얻 도록 하는 것을 허락한다.” 차서는 구족계를 받고 난 뒤의 연수 즉 법랍(法臘)을 기준으로 한다. 차서와 관련하여 밧티야나 아난다 등의 석가족 청년들 여섯 명은 출가하려고 했을 때, “우리들 석씨는 교만 합니다. 이 이발사 우바리는 오래도록 우리들의 하인이었습니다. 세 존이시여, 우선 우바리를 먼저 출가시켜 주십시오. 우리들은 우바리 에게 예경(敬禮), 영역(迎逆), 합장(合掌), 공경(恭敬)을 하겠습니다. 이 렇게 하여 우리들은 석씨의 석씨만을 없애겠습니다.”고 말하고 먼저 우바리를 출가시켰다고 한다.

맺는 말-오늘날의 수행공동체

V.

오늘날 세계 곳곳에는 수많은 수행공동체가 운영되고 있다. 대표 적인 것이 바로 틱낫한 스님이 운영하는 프랑스 보르도 지방의 플 럼빌리지(Plum Village) 공동체이다. 플럼빌리지에는 200명이 넘는 출 가수행자가 플럼빌리지와 그 밖의 4곳의 공동체 마을에서 살고 있 다. 플럼빌리지는 먹고, 걷고, 일하고, 함께 차를 마시는 가운데 깨 어 있는 마음을 키우기 위해 전 세계에서 수천 명이 찾아와 침묵과 명상, 휴식, 일과 놀이를 함께 하다가 돌아간다. 플럼빌리지는 여름 에는 4주간의 여름 안거와 겨울에는 90일간의 안거를 갖고 전 세계 의 수행자들을 맞는다. 봄, 가을에는 방문객들에게 1주일 이상 머무 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도 한다.

또 영국 스코틀랜드 북쪽에는 인간과 신과 자연은 하나라는 것을 깨닫기 위한 핀드혼(Findhorn) 공동체가 있다. 핀드혼 공동체는 생태 적·영성적 삶을 실천하고 있는 대표적 대안공동체로, 세계에코빌리 지네트워크(Global Eco-Village Network)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핀 드혼은 영성과 생태를 중시하는데, 영성이란 어느 특정 종교를 따르 는 것이 아니라 ‘내가 곧 신’이라는 생각으로 모든 것을 전체로 보 는 ‘총체적 사고’를 하는 것을 말한다. 핀드혼 방문자들은 주로 오전 에는 공동체 안의 여러 작업반으로 나뉘어 일하고, 오후에는 다양한 영성훈련을 하고, 저녁에는 강연을 듣는다. 핀드혼의 대표적인 영성 프로그램은 일주일 과정인 ‘경험 프로그램’인데, 이 프로그램에 참여 하는 사람들만 연간 4천여 명이나 된다. 핀드혼은 공동체 체험을 위 한 ‘체험주간’, ‘공동체 삶 탐구’ 등 1주일짜리 다양한 단기 프로그램 을 운영하고 있다.

태국 북동부의 시사껫(Sisaket)에는 승려와 일반인이 어우러져 살아 가는 아속공동체가 있다. 아속은 ‘환희’라는 뜻이다. 특히 ‘고통이 없 는 상태’의 환희다. 아속엔 유치원과 초등, 중고등, 기술학교 등 3개 의 학교가 있는데 유치원과 초등학생들의 대부분은 이 공동체에서 사는 집의 아이들이다. 그러나 중고등학교와 기술학교 학생들의 대 부분은 외지에서 왔다. 이들의 학비와 먹고 입고 자는 것 일체를 공 동체에서 해결해준다. 하지만 이들이 거저먹는 것은 아니다. 시사아 속 내엔 여러 개의 작은 공장들이 있다. 공동체 안뿐 아니라, 차로 10~20여분 거리에 여러 개의 농장들까지 있다. 아속공동체는 ‘부니 욤 네트워크’로도 불리는데 그들의 경제 원리가 ‘부니욤’, 즉 공덕주 의이기 때문이다. 부니욤 네트워크는 현재 30개의 공동체와 9개의 학교, 6개의 채식 레스토랑, 4개의 유기농 비료 공장, 3개의 방앗간, 2개의 허브의약품 공장, 하나의 병원, 160헥타르(ha)의 농장을 갖추 고 있다(한겨레 수행, 치유 전문 웹, 휴심정, 2017).

남인도 첸나이에 있는 퐁디셰리의 오로빌(Oroville)은 그 넓이가 750여만평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공동체마을이다. 1968년 개발을 시 작하여 지금은 45개국에서 온 2,500명이 한곳에 모여 살고 있다. 오 로빌은 인도 출신의 영적 지도자 오르빈도의 사상을 토대로 만들어 진 수행공동체로 프랑스 국적 유대인 마더에 의해 건설되었다. 오로 빌은 무엇보다 아이들의 천국으로 학비는 모두 무료이고, 학교에는 선생도 아이들도 모두 이름만 부를 뿐, ‘교장선생님’이나 ‘선생님’ 같 은 호칭도 없다. 시험과 상벌도 없어 아이들은 하여금 마음껏 놀고, 억압받지 않고 자기를 발견하고 자기를 발현하게 하여, 깊은 내면의 자아가 존재의 중심에 서도록 도와준다. 오로빌에는 세계적 수준의 음악가와 화가, 의사, 음악감독, 건축가 등이 적지 않아 아이들은 이 들로부터 무료로 개인지도까지 받을 수 있다(한겨레 수행, 치유 전문 웹, 휴심정, 2017).

또 종교개혁 시기 소박함과 사랑, 비폭력을 추구하는 후터파 공 동체의 이념을 바탕으로 영국과 미국, 그리고 호주 등 여러 나라에 걸쳐 수 천 명이 참여하고 있는 브루더호프(Bruderhof) 공동체도 있 다.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기초는 그리스도의 산상설교를 비롯해서 형제 사랑과 원수 사랑, 서로간의 섬김, 비폭력과 무장 거부, 성적 순결, 충실한 결혼 생활 등이다. 이들은 초대교회와 같이 모든 것을 공유하며, 점심과 저녁 식사는 함께 한다. 교제, 찬양, 기도, 의사 결 정을 위한 모임을 매주 몇 차례에 걸쳐 저녁 시간에 갖는다(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2000).

가까운 일본에는 자연과 하나 됨을 추구하며 농사를 짓는 야마기 시 공동체가 있다. 야마기시즘의 정신적 뿌리는 야마기시 미요조(山岸巳代藏: 1901~1961)이다. 그는 농작물들은 인간과 닭에게 먹거리 를 제공하고, 인간과 닭은 그 먹거리로 건강해지며, 다시 배설물을 거름으로 자연에 돌려줘 순환하며 서로 번영해가는 모습을 통해 ‘나’라는 틀 속에서 벗어나 모두가 상생하는 공동체 마을을 시작하 였다. 야마기시즘에 대한 호응이 커지면서 이를 실현하기 위한 ‘실 현지’라는 공동체마을이 일본 30여 곳을 비롯해 우리나라, 브라질, 스위스, 타이, 독일,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등 50여 곳에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도 현재 수많은 수행공동체가 운영되고 있다. 해방 이 후 우리나라 최초의 수행공동체는 기독교 운동가 이현필이 1947년 남원 서리내에서 청소년 제자들과 성경공부를 하며 발족한 동광원 (東光園)이다.

실상사 옆에는 모든 것이 그물망처럼 연결돼 있다는 ‘인드라망’ 사상에 따라 1998년 도법 스님 등이 설립한 인드라망생명공동체가 있다. 또 경남 산청군 신안면 갈전리에는 ‘민들레공동체’가 있다.4) 공동체 구성원들은 비인가 대안학교인 민들레학교 중·고 과정생 43 명과 교사 7명으로 이뤄져있다. 아이들은 농사부, 양재부, 대안기술 부, 건축부, 목공예부 등 중에서 선택해 ‘삶의 기술’을 배우고 있다. 서울 도봉동에는 박민수(51) 목사가 설립한 49명의 대식구가 한집에 서 살아가는 기독교 공동체 은혜공동체가 있으며, 경남 합천군 쌍백 면 하신리에는 오두막 공동체가 있다. 오두막 공동체에는 출소자, 알코올 중독자, 지적장애인, 그들의 보호자 등 30여명이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간다. 포항시 북구 신광면 안덕마을에는 사랑마을공동체 가 있다. 사랑마을은 한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이기도 한 유장춘 목 사를 중심으로 세워졌다. 공동체적 성격이 비교적 느슨한 본량마을 공동체네트워크(본마공)는 광주시내에서 육아를 위한 사회적 협동조 합을 꾸려 ‘햇살가득’ 공동육아를 하던 이들이 모태가 만들어졌다. 창원대 상담심리학과 김병채 교수의 주도로 만들어진 슈리 크리슈 나다스 아쉬람은 인도식 수행공동체이다. 그는 ‘진리와의 교제’를 뜻 하는 삿상이라는 문답을 통해 스스로가 깨달은 존재, 즉 참나임을 깨닫도록 지도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오늘날의 수행공동체는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먼저 오늘날의 수행공동체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오직 에고의 욕망 실현을 위한 현대문명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찾는다 는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있다. 둘째로 일본의 야마기시 공동체와 국내의 본마공을 제외하면 이들 대부분은 종교적 토대 위에서 수립 된 공동체이다. 따라서 이들은 각각의 종교적 교리에서 현대문명의 대안을 찾고 있다. 또한, 종교적 토대가 있든 없든 수행공동체의 설 립자 혹은 지도자를 가지고 있다. 셋째로 인도의 오로빌이나 국내의 민들레공동체와 본마공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공동체는 사유재산 없이 공동재산을 택하고 있다. 아속이나 브루더호프 등 성공한 공동 체들은 농사 말고도 수입으로 자립할 만한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또 플럼빌리지나 핀드혼 공동체와 같이 공동체 참가자들의 회비로 운영되기도 한다. 넷째로 대부분의 공동체는 새로운 회원을 공동체 가족으로 받아들일 때 공동체 전원이 찬성을 조건으로 하고 있다. 정식 회원으로 받아들여지기 전에 신입 회원은 최소 몇 달에서 1년 가량 공동체 생활을 함께 한다. 그 뒤 기존 회원들의 만장일치에 의 해 회원 가입이 승인된다.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에 분란을 일으키지 않고 살 수 있을 정도의 마음 자세나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다섯째 공동체 구성원들에게는 대부분의 경우 보수가 주어지지 않는다. 물론 의식주와 의료 등 복지는 공동 체에서 보장해준다. 오로빌처럼 규모가 큰 공동체에서는 생활이 어 려운 이들에게 기본 생계비를 주는 곳도 있다. 야마기시는 한 달에 1만엔 정도의 용돈을 주지만, 브루더호프에는 용돈이 따로 없다. 그 러나 개인적으로 외출할 때 돈이 필요하면 신청을 하고 타서 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수행공동체를 방문하려면 반드시 미리 연락해서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방문 허가를 받아 방문하게 되면 공동 체 사람들과 똑같이 일하며 먹고 자는 것이 원칙이고 따로 숙식비 를 받지는 않는다. 물론 핀드혼이나 야마기시에서 분리되어 나온 일 본의 애즈원과 같이 방문자 프로그램을 따로 운영하는 경우는 별도 의 참가비를 받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족의 본질은 사랑의 공동체라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 개개인의 삶의 목표가 깨달음을 통해 사랑의 존재로 다 시 태어나는 것이라는 주장과 같다. 인공지능 시대의 수행공동체로 서의 가족은 이러한 사랑의 공동체를 회복하는 중요한 통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공지능 시대의 가족이 수행공동체로 새롭게 태어날 때 불교의 승가는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Notes

[1]자세한 내용은 졸고 “한국 유학에서의 수행 노동과 낙도 여가”, 『한국 전통사상 과 새로운 노동관』(홍승표 외, 2010: 174-212)을 참조할 것.

[2]오구라 기조,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조성환 역, 2017: 23, 모시는 사람들). 이러한 원리주의적 성향은 물론 유학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조선 후기에 유입 된 천주교와 개화기에 유입된 개신교 역시 그 발상지보다 더욱 더 원리적이라 는 점에서 유학에 뒤지지 않는다.

[3]서산대사, 『선가귀감』(선학간행회 역, 용화선원, 1984: 94). 이어 “계학은 도둑을 잡는 것이고, 정학은 도둑을 묶어 놓는 것이고, 혜학은 도둑을 죽여 버리는 것 입니다. 여기서 도둑은 번뇌를 말합니다. 또한 계의 그릇이 온전하고 견고해야 선정의 물이 맑게 고이고, 따라서 지혜의 달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 하고 있다(『선가귀감』, 1984: 96).

[4]이하 우리나라의 수행공동체에 대한 내용은 한겨레 수행, 치유 전문 웹, 휴심 정, “공동체 마을을 찾아서”(조현, 2017)를 토대로 정리한 것이다.

정재걸

은 서울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 를 받았으며, 현재 대구교육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는 『오래된 미래교육』, 『삶의 완성을 위한 죽음교육』 등이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는 『나는 누구인가?—唯識30송의 경우』, 『復其初의 의미에 대한 일 고찰』, 『죽음교육에 대한 일 연구—華嚴의 事事無碍法界를 중심으로』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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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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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성규 “계율의 제정(2)” 《통섭불교》 2018(2) 3월호. 32-37쪽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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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걸 홍승표 “한국 유학에서의 수행 노동과 낙도 여가”《한국전통사상과 새로운 노동관》 2010 계명대학교 출판부 174-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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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수행, 치유 전문 웹, 휴심정 “공동체 마을을 찾아서”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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